‘파머스마켓’이라는 오작교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고베시청 앞에는 농부의 트럭이 모인다. 

질서 정연하게 주차된 트럭 짐칸에 매대를 올리고, 공원 중앙에 ‘FARMERS MARKET’이란 푯말을 세우면 시작되는 농부의 시장.

거창한 부스나 현수막 없이도 한눈에 시장임을 알 수 있는 곳.

이곳에서 주말 이른 아침부터 만난 농부와 소비자는 자신의 일상을 나눈다. 마치 오래된 이웃이나 친구처럼.

치열한 마감세일이나 호객행위 대신, 공원이라는 공공의 장소에서 가벼이 만나 안부를 나누는 사람들.

햇수로 3년차가 된 이 농부의 시장은 생산물과 판매라는 치열한 현실을 두고 어떻게 ‘커뮤니티’로 풀어 냈을까.

사용자를 배려하는 기획과 디테일

고베 파머스마켓과 가스트로폴리스(미식도시)로서의 고베시를 브랜딩한 기획자 이와노 타스쿠 씨. 그는 자신이 기획한 파머스마켓에 가족과 함께 장을 보러왔다 헬로파머 취재진을 만났다.

그 중심에는 고베 파머스마켓의 기획자이자 고베시를 브랜딩한 기획자 이와노 타스쿠 씨가 있었다.

처음 고베시는 시의 농산물 프로모션을 위해 타스쿠 씨를 찾았다.

고베시의 처음 아이디어는 농산물에 고베시 인증 스티커를 붙이거나 회의를 하는 것이었다.

타스쿠 씨는 고베시의 의견에 맞춰 수동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대신, 농산물의 생산자인 농부와 그 농산물을 구입할 소비자를 직접 만났다.

“고베는 중앙에 산을 두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어요. 남쪽에는 큰 도시가, 북쪽에는 농촌이 형성되어 있죠. 일본은 고속도로 통행료가 비싸고, 고베시 가운데에 우뚝 선 산은 서로의 심리적 거리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로컬푸드를 구입할 고베의 주부, 쉐프 같은 소비자를 만나 인터뷰해 보니 믿을만한 지역의 농산물을 사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농부도 지역의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싶지만 마땅한 판로가 없었고요.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지만, 만날 수 없던 상황이었죠(웃음).”

타스쿠 씨는 파머스 마켓으로 ‘서로 좋아하지만 만날 수 없는 그들’에게 오작교를 놓아주기로 했다.

파머스 마켓에 참여한 화훼 농부가 미모사와 튤립 같은 봄의 꽃(절화)을 진열해 소개하고 있다.

고베 파머스마켓을 시작하기 전, 심층 인터뷰를 통해 사용자의 니즈를 반영해 디테일을 만들었다.

우선 ‘판매’보다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곳으로 파머스마켓의 목표를 분명히 했다.

‘안전한’, ‘친환경 먹거리’ 같은 소비자의 니즈가 있었지만, 착한 슬로건 대신 ‘EAT LOCAL KOBE’를 내걸었다.

이는 농산물을 두고 옳고 그름의 개념이 아닌, 일본의 먹거리 문화인 ‘지산지소’를 실천하는 장으로 만들었다.

농부에게는 판매가 제2의 업이 되지 않도록 파머스마켓의 운영시간은 3시간으로 제한했다.

농부는 트럭 가득 농산물을 가져와 판매에 집중하는 대신, 소비자와 대화를 나누며 욕구를 발견할 수 있다.

소비자는 원하는 농산물을 농부에게 제안할 수 있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농산물의 생산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장.

팔아야 하고, 사줘야 한다는 의무감 대신,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친구가 된 서로는 더 탄탄한 관계로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됐다.

“쉐프들은 특이하거나 눈에 띄는 지역 농산물을 찾고 싶다는 니즈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걸 농부에게 의뢰하면 반드시 1년 내내 구입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어서 의뢰를 못해왔다고 해요. 

또 고베에는 고급 슈퍼마켓이 있는데 거기엔 고베 로컬푸드보다는 도쿄에서 오거나 수입 농산물 위주로 가져다 팔기도 했고요.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젊은 주부들도 고베의 유기농 채소를 사고 싶어하는 니즈가 있더라고요. 

시내에서 그런 야채를 찾기는 힘들었는데, 파머스마켓이라면 그 욕구를 다 충족할 수 있겠더라고요. 시민이 즐길 수 있는 일상 안에 농업이 있는 모습을 기획했어요.”

고베 파머스마켓은 시작하기 전부터 홈페이지를 제작해 준비기간 동안 농부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에게 농부를 소개했다.

또, 셀러로 나선 경험이 없는 농부들이 상품을 진열하고 부스를 꾸미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큰 것을 인지하고 디자이너와 연결했다.

디자이너는 농부와 함께 보드를 꾸미고 상품을 진열하는 법을 알려줬다.

© FARM CIRCUS

고베시는 파머스마켓 뿐 아니라 시의 이미지를 가스트로폴리스(미식도시)로 만들기 위해 지역의 로컬푸드와 슬로푸드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파머스마켓을 기획한 타스쿠 씨는 고베에 ‘팜서커스’라는 휴게소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휴게소를 로컬푸드와 연결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팜서커스는 단순히 휴게공간에서 벗어나 ‘Fun to eat local’을 슬로건으로 맛있고 즐겁게 소비할 수 있는 식문화의 장이 되었다.

파머스마켓에서 통역을 해주고 고베에서 미식도시의 여러 프로젝트를 지켜본 슬로푸드 네트워크 메구미 와타나베 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고베 파머스마켓은 단순히 파머스마켓을 열고 싶어하는 단체가 만든 이벤트가 아니에요. 오히려 시가 주도적으로 미식이라는 큰 타이틀로 팜서커스 같은 프로젝트와 꾸준히 연결시켜왔기 때문에 더욱 성공적이었어요.”

사용자의 욕구를 충분히 듣고 핵심을 잡아 디테일을 완성해 나간 기획과 같은 결의 기획이 계속 교차되고 만나는 도시, 고베.

이 미식도시의 파머스마켓은 지역의 농산물을 맛있게 먹고 즐기는 이 지역의 미식 문화의 하나로 잘 정착되어 있었다.


고베 파머스마켓의 사람들


타카히로 야마다 씨(고베시 공무원)

“일본도 농협의 입김이 센 편이라 파머스마켓을 추진하는데 고베시에서 대응을 잘 했어요. 준비하면서 농협을 절대 들어오지 않게 했어요. 시청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그 역할을 야마다 씨가 잘 해줬어요. 

농협이 아닌, 파머스마켓에만 와야 만날 수 있는 소규모 농부로 차별점을 뒀죠. 여기서 만난 농부들이 커뮤니티를 이루고, 소비자가 농부를 만나 다시 농부가 되는 그런 커뮤니티를 이루는데 많은 역할을 했어요.” -이와노 다스쿠


Q&A

| 출점 농부에 대한 기준이 있는지?
콘셉트에 공감할 수 있는 농부면서, 기본적으로 고베에 살아야 할 것. 그게 전부다. 반드시 유기농만 가능한 건 아니다.

| 검사나 고베 로컬푸드 인증이 있는지?
고베시 인증이 있다. ‘고베 신사이’라고 농약을 반으로 줄인 농산물에 인증한다. 그런데 비슷한 인증을 정부에서도 하고, 현에서도 하고, 고베시에서도 한다. 그걸 붙인다고 그게 브랜딩에 큰 도움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증이 너무 많아서 실질적으로는 소비자의 혼란만 불러 일으킬 수 있다.

| 특별히 시청앞 공원에서 파머스 마켓을 여는 이유는?
원래 이 공원은 시민들에게 전혀 활용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린펜스를 키우고 있지만 원래는 그런 시설조차 없었고, 그냥 피난용 공원이었다.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이라 그동안 공원 활용하는 법을 많이 고민했는데 파머스마켓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여기 장소가 있고,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사람들이 토요일에 공원에 오면 무언가가 있다는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파머스마켓을 매주 연다.

| 평균적으로 얼마나 많은 농부팀과 관람객 오는가?
농부팀 15팀 정도. 손님은 500~1,000명 정도 온다.

| 농부팀 참가비나 수수료가 있는지?
판매금액의 10% 상당의 수수료가 있다. 3만엔 이하면 3천엔. 그 이상은 15%. 운영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수입은 아니다(웃음).

| 실제 농부들에게 매출로 많이 이어지는가?
여기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라기보다는 홍보의 장이다. 근처에 음식점이 많은데, 좋은 재료를 찾고 있다. 소비자도 그렇고. 그들이 여태껏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여기서 연결된다.

파머스마켓을 운영하며 고민은 무엇인가?
이 마켓이 점점 커가면 좋겠지만, 서두를 생각은 없다. 여기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 근처(키타노)에 가게를 만들어 파머스마켓에 판매하는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파머스마켓이 가장 잘 되는 시기는?
매 시즌마다 10번씩, 1년에 40번 운영하는데 봄 시즌이 가장 손님이 많다.


Bio Creators

“파머스마켓에 출점하는 농부 대부분이 많이 유명해졌어요. 여기 나오면 ‘아, 그 농부팀 여기 나오는구나’ 이런 이미지가 있죠. 특히 오사라 씨가 거의 매일 나오는 유일한 멤버예요. 

오사라씨는 젊은 사람들이 ‘농부가 되고 싶다’,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찾아오면 연수해 주고, 처음에는 이름도 빌려주며 많이 돕고 있어요. 그래서 언론에도 많이 소개됐죠.” -타카히로 야마다 씨

고베 파머스마켓의 농부 대부분이 스타라 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 다른 농부들과 커뮤니티를 맺는 능력이 있는 오사라 씨는 특히 독보적이다.

호텔같은 규모가 큰 식당에는 많은 농산물을 필요로 해 함께 협업하는 농장들과 나눠서 키우기도 하고, CSA도 함께 하고 있다. 10주 단위로 소비자를 모집해 채소 꾸러미를 보내는 형태다.

파머스마켓에서 인연을 맺은 농부의 수가 늘어 올해부터 다양한 이벤트를 열 준비하고 있다는 그들.

오사라 씨와 협업관계를 맺고 있는 농부들은 파머스마켓으로 농부를 모으고,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취재협조 : Slow Food Youth Network Tokyo 와타나베 메구미(고베 파머스 마켓 통역 및 섭외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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