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플랫폼이 된다면

시골을 지나 다시 시골, 바다 건너 다시 시골.
오사카에서 출발해 차로 다섯시간을 달려 산 속에 놓인 한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의 이름은 카미야마.
비가 막 그쳐 산 허리에 짙은 구름을 두르고 있는 풍경을 보자마자 탄성이 터졌다.

“우와, 정령이 살 것 같은 곳이야!” 

“응, 한자로 쓰면 신산(神山)이란다.”

작은 밭과 산과 들, 자연이 펼쳐진 풍경에 드문드문 목조주택이 얹힌 마을.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가득한 이 곳이 특별한 이유는 아름다운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겉으로 보면 자연 뿐인 이 마을에는 많은 청년이 이주해 살고 있고, 외지인이 들락거리고 있다.


시내에 발을 담그며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동네

인구 6,000명의 작은 마을인 카미야마 정이 청년들의 핫플레이스가 된 데에는 비영리 단체 그린밸리(Green Valley)가 있다.

1999년 인구가 줄고 마을이 고령화가 되며 마을에 활기를 잃자 그린벨리는 KAIR(Kamiyama Artist in Residence)라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만들기를 시작했다.

마을 전역에는 광회선인터넷망을 설치해 IT회사 20여곳의 위성 사무소를 유치했고, 디지털 노마드족을 위해 코워킹 스페이스인 ‘Kamiyama Valley Satellite Office Complex’와 숙소 겸 사무실로 쓸 수있는 ‘Week Kamiyama’를 만들었다. 

© WEEK kamiyama

그리하여 산골을 흐르는 시내에 발을 담그면서도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지금의 카미야마가 탄행했다.
지금도 카미야마에는 요리사나 개발자나 예술가 같은 직업인이 모여 일하고, 네트워킹 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일하며 다양한 성향의 동료를 만날 수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는 도시의 플랫폼과는 차별화 된 매력을 갖는다.

‘Week Kamiyama’를 가기 전 꼭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바로 수많은 스피커 더미로 전통 문을 형상한 랜드마크 ‘가라오케 도리’.

누구든 블루투스로 스피커에 연결하면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는 마을의 랜드마크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며 온라인으로도 연결되는 ‘IT 농촌마을’인 카미야마 마을의 정체성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청년농부, 외부인과 함께하는 지산지소

카미야마 마을에는 반드시 들러야 할 맛집이 있다. 바로 마을 초입에 자리한 식당 ‘가마야’.

이곳 역시 일본인의 식문화 정신 ‘지산지소’ 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로컬식당으로, 카미야마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 위주로 요리해 선보인다.

마감 시간이 임박해 도착했는데도 대기자가 많아 한참 기다린 뒤에야 식사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식당은 조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으며, 테이블마다 카드를 비치해 계절별로 내가 먹고있는 음식이 어느정도의 비율로 카미야마 마을에서 생산했는지 정보를 주고 있었다.

가마야 식당은 카미야마 지역의 농산물을 알리는 ‘푸드 허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역의 농산물을 소비하고, 유통하는 장소다. 푸드 허브 프로젝트는 식당에 쓰일 식재료를 직접 생산하기도 한다.

또한 농업을 배우고 싶은 청년을 모집해 교육하고, 직접 농산물을 기를 수 있도록 농부로 키운다. 청년을 마을로 불러 농부로 키우고, 농부는 직접 농산물을 기른다.
수확한 농산물은 판로 걱정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식당에서 조리해 완벽한 순환을 만드는 곳. 이것이 푸드 허브 프로젝트가 구축하는 청년, 마을, 외지인과의 순환고리다.
농사로, 마을로 구축하는 단단한 생태계는 이곳을 찾는 외지인에게도 맛과 서비스로 큰 만족을 주고 있다.


‘콩나물 시루 같은 전철’을
거부한 사람들이 임시 정착하는 곳

마을의 공유식당 ‘카페 우메보시’에서 ‘카페 에스타테’를 운영하는 나츠미 타테야마 씨

한국인 답게 식후에는 커피를 마셔야 한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고베 파머스 마켓에서 큰 도움을 받은 메구미 씨의 추천으로 공유식당 ‘카페 우메보시’를 찾았다. 그곳에서는 주말에만 ‘카페 에스타테’를 운영하는 나츠미 타테야마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고베 출신인 나츠미 씨는 2015년 가을부터 카미야마 마을에 살고 있다.
카미야마 위크에서 요리사로 일했던 그는 주말에는 카페를, 주중에는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외국인이 만든 맥주 양조장에서 일한다. 이곳에서의 삶을 점수로 매기자면 100점 만점에 90점이라 느낄 정도로 만족한다는 그.

“콩나물 시루 같은 전철을 안 타도 되고, 내가 기른 채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거든요. 그리고 여기에는 재미있는 사람이 많이 살아요. 푸드 허브 프로젝트를 비롯해 예술가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며 많은 이벤트를 열거든요.”

카페 에스타테의 메뉴판(좌), 벽의 빈 곳에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여러 이벤트가 걸려있다(우).

그가 말한 마을의 재미있는 사람들은 카페 우메보시의 벽면을 여러 이벤트로 가득 메웠다.

‘이웃집 할머니의 논둑을 함께 보수할 사람을 모집합니다. 5인 모집, 끝난 뒤에는 할머니의 맛있는 새참과 음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밴드 보컬을 모집합니다. 결성한지 3개월 됐습니다. 그냥 같이 할 사람?’

‘수제맥주를 같이 만들어요. 프로젝트 기간은 n개월, 참가비 n엔’

나츠미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주민 한 명이 카페를 들러 안내문을 붙이고 갔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다양한 이벤트를 벌리는 이곳은 공동체 보다는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렸다.


나무공방 SHIZQ(시즈쿠) 스튜디오를 둘러싼 담장
나무공방 SHIZQ(시즈쿠) 스튜디오의 공간을 함께 쓰는 디자이너 미카 야마구치 씨

카페 우메보시를 지나 발견한 곳은 토토로가 살 것 같은 아기자기한 나무 공방. 여기에서는 디자이너 미카 야마구치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시즈쿠 브랜드를 가진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며 자회사격인 시즈쿠의 홍보 디자인을 제작하며 협업한다는 그는 오사카에서 10년동안 회사를 다니다 근처 도쿠시마로 이주해 카미야마로 출퇴근 하고 있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것이 반복되며 시골에서의 삶을 꿈꿨다는 그는 여유있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그는 마을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며 취미생활도 즐기고 있다.

시즈쿠 스튜디오에는 삼나무를 1년 반 동안 관찰하고 손으로 깎아, 우레탄과 세라믹을 섞은 도료로 마무리 하기 때문에 총 3년이 걸린다는 나무로 만든 컵이 진열되어 있다.

이 마을의 기획이
지속적으로 성공하는 이유

카미야마 마을의 성공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현지 청년들과 이야기 했을 때 공통적으로 꼽는 원인이 있었다.

먼저 그린발레 같은 NPO가 다양한 일을 하는 외지인을 모집해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기에 충분한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

카미야마 마을은 주기적으로 외부의 청년을 모집해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턴십의 자격은 직업이 없는 외지인으로, 인턴십을 마쳤다고 해서 반드시 카미야마에 정착하도록 강제하지 않는다.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인턴십에 참여한 청년 중 절반이 마을에 남아 살고있다.

또다른 이유는 외지인에 친절한 마을사람들이었다. 카미야마 마을이 있는 시코쿠 섬은 예전부터 순례길이 유명한 곳이라 원래부터 외지인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다. 때문에 외지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마을의 풍토가 마을로 이주하는 청년세대와 크게 갈등을 빚지 않는 것도 큰 성공 요인이다.

카미야마 마을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꼭 이곳에서 가정을 이루며 전통적인 모습으로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노마드, 비혼, 무자녀, 동거 등 다양한 삶의 형태가 등장하고, 존중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 이런 시대에 반드시 마을에 정착해야 한다는 강박은 어쩌면 구시대적 발상일 수 있다.
찾아오는 사람을 배척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의 노동과 삶의 형태가 존중받는 문화. 이 마을이 늘 활기넘치고 시끄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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