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포장매니저 유펑의 이중생활 종료?

올해 정말 재미있는 일이 많았어요. 그 중 하나는 제로웨이스트숍의 매니저로 일한 경험입니다. 제로웨이스트 매거진을 만드는 ‘쓸’에서 ‘무포장가게 쓸’을 런칭했고, 기획과 초기 운영 과정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무포장가게는 8월~11월까지 은평구 녹번동에서 평화교육단체 ‘피스모모’가 운영하는 ‘트랜스-‘라는 카페에서 샵인샵으로 운영하고 있고, 저는 7월의 초기기획단계부터 참여해 10월까지 함께 일했습니다.

유펑이 기른 두백감자(왼)와 이복자 농민의 속노랑홍감자

처음 쓸에서 저를 섭외했을 때 좋은 농산물을 큐레이션 해주길 원했고, 저는 쓸에서 할 수 있는 자원 안에서 제로웨이스트의 핵심인 ‘순환’에 초점을 맞춰 1. 소농 2. 제철 3. 시설없이 기른 노지농산물 4. 순환농법을 사용하는 농민들의 농산물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5번째 원칙은 제가 꼭 농사짓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농민들의 농산물만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광명 이복자 농민의 토종감자들(가장 인기가 많았던 속노랑홍감자와, 묵정두지감자, 강화분홍감자), 의성 맑은터농장의 마늘, 진안 이든농장의 쌀, 제주 연주언니의 완두콩, 무안 선숙언니의 단호박, 합천 서와의 꿀고구마… 그리고 제가 직접 기른 두백감자와 토종청주오이, 가지를 꺼내어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손바닥만한 텃밭이지만 농사를 지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손님들과 도움 주신 분들에게 ‘덤’을 드릴 수 있었거든요.

소농의 농산물처럼 생산과정에서 쓰레기를 고민하고, 제로웨이스트 정신을 녹여낸 소규모 생산자들의 잘 기획된 질좋은 물건들이 큐레이션 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달리오로로의 천 마스크와 커피필터, 밝은공방의 빗자루, 변온인간의 수제비누망을 들여다 놓았고, 평소에 좋아했던 닥터브로너스(닥터브로너스는 100%리사이클 플라스틱을 사용합니다)와 톤28, 닥터노아에 컨택해 물건을 받기도 했습니다. 구석구석 저의 취향과 사심을 담아 기획했죠.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싶지만 물건은 너무 사랑하는 저와 찰떡인 일이 아니었나 싶어요. 몸이 혹사되는 것도 모르고 즐겁게 일했습니다.

무포장가게이지만 포장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위해 쓸에서 지난 행사때 받았던 공병과 에코백, 종이가방을 재활용해 제공했고, 봉투는 신문지를 접어 제공하는 것을 제안했습니다. 무포장가게를 오픈하는 날, 제가 사랑하는 종합재미농장을 초대해 함께 종이봉투를 접는 워크숍을 기획해 3가지 종류의 봉투를 함께 접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재미농장은 꾸러미에 늘 정성껏 접은 봉투에 농산물을 싸서 보내주었는데, 이들의 봉투접기와 제로웨이스트 삶이 우리의 시작에 큰 의미를 더해주었어요.

한동안 무포장가게를 장식했던 토마토 모종들

농산물은 늘 수확된 일부분만 만나는 도시인을 위해 틈틈이 채소 모종을 가져다 두기도 했어요. 씨앗이 떨어진 바람에 저절로 자란 토마토 본체는 무포장가게 한 켠을 초록초록하게 물들여주기도 했죠.

무포장가게를 하며 개인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와 먹거리를 중심으로 한 저의 농산물부터 분해까지 큰 틀에서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있었습니다.

‘사단법인 캠프’에서 운영하는 ‘2020세계시민교육 온라인 워크숍’에서 소개하기도 했고, 엘리펀트스페이스에서도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다큐를 보며 ‘버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또 부산 동네책방 카프카의 밤에서 ‘우리는 모두 분해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제로 3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친구들이 많이 놀러와줬습니다 🙂

8월 중순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해 사람보다 비둘기를 보는 날이 더 많았던 날도 많았고 ? 욕심내서 일을 벌이는 바람에 많은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아낌없이 도와주고 마음 보내준 종합재미농장, 제로랩 김동훈 실장, 언제나 넉넉하게 내어주는 유펑의 아이돌 농민들, 맛있는 커리로 응원해줬던 지구커리 민송, 마음이 싸늘하게 식을 때마다 온기를 더해주던 트랜스 매니저 펭펭, 동료를 대하는 태도와 사랑하는 마음을 알려준 트랜스 지기님들, 오랜만에 함께 협업해 너무 즐거웠던 엘리펀트스페이스 정욱님, 매번 설거지비누와 파우치 같은 걸 보내줘서 너무 고맙고 미안했던 나의 친구 달리오로로, 지칠 때마다 귀신같이 알고(?) 찾아와 준 듣는연구소 우군…,
충주에서 유펑의 최애 내추럴 시드르 ‘레돔’을 생산하는 소설가 신이현 쌤도 레돔을 보내주며 응원해주셨어요. “제로웨이스트는 유럽에서도 10%밖에 안 가는 곳인데, 정말 고생이 많다”면서요. 그리고 녹색좌파 정치인 이현정님과 몇 년동안 환경책을 함께 읽으며 분해에 대해 공들여서 배우고 토론하며 보낸 지난 시간이 기획과 방향을 잡는데 큰 도움을 줬습니다. 모두 관계가 도와준 일이었어요.

이렇게 시간과 관계, 마음을 정말 많이 내어야 했던 일이었고, 속상한 일도 많았지만, 넉넉하게 베풀어 주고, 응원해 준 마음을 받고 매일매일 배우고, 감동한 날들이었어요. 잊지 못할 거예요.

제로웨이스트는 한 명보다 여럿이 실천할 수록 좋고, 가장 좋은 것은 시스템이 바뀌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해요. 고백하자면 적은 인원이 많은 일을 해치워야 한다는 핑계로 내부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제로웨이스트를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면서 풀어내지 못했어요. 이 부분이 가장 뼈 아프게 다가옵니다.

이 일을 하며 배우게 된 감각은 제로웨이스트는 관계를 닦는 일이라는 것, 쓰레기를 줄이고 치우는 삶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도 주변에 이런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 그들에게 기대고, 신세지면서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살면서 차근차근 갚을 날이 있겠죠. 이 경험을 계기로 저의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는 한층 더 심화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쓰레기를 줄이는 삶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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