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제로웨이스트숍을 시도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2022.4.27 업데이트

  • 2022년 4월 27일부터 귤현동제로웨이스트샾이 이전했습니다.
  • 인천시 계양구 형제봉길 69 마일드밀 안 무인팝업샵 (카카오페이/계좌이체 결제)
  • 영업시간: 마일드밀 영업시간 (주말 오전10시~오후6시)
  • 빵과 커피를 파는 곳이라 샴푸바와 고체비누 종류는 취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F&B 매장과 협업하는 경우 이 점 참고하시면 좋아요!

제로웨이스트숍 매니저 유펑의 이중생활은 아직 유효합니다. 지난 3월 동네 카페에 작은 코너에 포장없이 살 수 있는 물건들을 가져다 놓고 ‘귤현동제로웨이스트샾‘ 운영을 시작했거든요. 이제 5월이 되었으니 세 달째를 맞이하네요.

제가 제로웨이스트숍을 차리니까 사람들이 많이 물어봤어요.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그거 대체 어떻게 하냐고요. 네, 사실 별로 어렵지 않아요. 저처럼 소소하게 내가 사는 동네에서 작게 시도해보고 싶다면 큰 돈(저는 이웃의 후원금 포함해 사비 딱 150만원 썼습니다) 없이 시도해볼 수 있는 법을 알려드릴게요. 물론 제 개인적인 사례이니까, 이 사례를 참고해서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겠죠.


1. 왜 제로웨이스트숍을 만들고 싶은가

우리동네는 인구수 2만명이 조금 넘는 작은 신도시입니다. 주거 밀집지역이 따로 있는데, 그 구역을 끝에서 끝까지 걸어간다면 15분 정도 걸리는 작은 동네예요. 대부분 서울로 출퇴근해서 평일에 동네를 돌아다니면 너무 한산하고, 지나치는 사람도 별로 없는 베드타운이죠. 그래서 우리 동네에는 식당과 카페, 세탁소처럼 꼭 필요해 찾아갈 수 밖에 없는 상점들이 유일합니다. 처음 이사올 때 꽃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마저도 장사가 안 돼 사라졌어요. 이런 동네에서 제로웨이스트숍 같은 마이너한 업종의 가게를 낸다면 당연히 장사가 잘 안 되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로웨이스트숍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유를 정리해 봤습니다.

  1. 우리동네에 제로웨이스트숍이 없다
  2. 동네에 제로웨이스트숍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더 많은 제로웨이스터를 발견하고, 만들 수 있겠다
  3. 대나무칫솔과 샴푸바 한두 개 사기 위해 지하철 타고 서울에 나가거나 택배를 시키고 싶지 않다!!! (이게 제일 핵심)

2. 어떻게 돈 없이 시도할 것인가 ?

제로웨이스트숍이 돈이 안 된다는 건 지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물론 잘되는 곳도 있지만, 제가 잠깐이나마 운영해 본 경험은 그랬어요. 제로웨이스트숍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경험한 상태에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모두 그만두고 제로웨이스트숍에 올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제로웨이스트숍을 굳이, 동네에, 내기 위해 고민한 방법은 이렇습니다.

  1. 함께 할 동료나 투자자를 찾는다
  2. 팝업스토어로 입점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다
  3. 소규모 주문에도 흔쾌히 물건을 보내줄 생산자를 찾는다

저에게는 실무를 함께해주지 않지만 ‘네가 이런 일을 해보겠다면’에 50만원을 아무런 조건없이 턱하니 내어준 동네 동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돈 100만원을 더해 150만원의 초기자금(?)을 모았죠. 그 동료는 동네 카페를 소개해줬습니다. 카페 대표와 만나 제로웨이스트숍을 만들어보고 싶은 이유와, 현실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수수료에 대해 제안했고, 서로 이런 공간의 ‘필요성’에 공감해서 카운터 근처의 코너에 제로웨이스트숍이 만들어집니다. 소규모 주문에도 흔쾌히 불건을 보내줄 생산자는 아래에 정리할게요.


3.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자 이제, 사업을 시작할 때 가장 현실적인 부분인 자금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은 돈이 전부가 아니죠. 1, 2의 현실을 두고 운영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지원금’을 많이 권했습니다. 하지만 몇 번 지원금을 받은 사업에 고용돼 협업해 본 경험을 돌이켜보니, 지원금을 쓴다는 건 너무 많은 일을 해야하는 것이더라고요. 지원금을 쓰고 다양한 제품을 가져다두어 그럴싸하게 차려 놓았지만 실제로 제품이 팔리지 않아 무용해진다거나, 노동력을 너무 많이 쓰고 소진되어 제로웨이스트숍이라면 꼴도 보기 싫어져서 한 번 해보고 마는 그런 걸 원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동네에 제로웨이스트숍이 작게나마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기로 했어요. 그래서 계획한 운영의 방향은요.

  1. 동네사람들이 간단하게 샴푸바나 대나무 칫솔을 사고 싶을 때 부담없이 올 수 있는 곳이라면 좋겠다
  2. 소규모 생산자의 상품 위주로 큐레이션 해야겠다
  3. 제로웨이스트 입문에 도움이 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샴푸바나, 대나무칫솔이 너무나 익숙하지만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사람도 많다는 걸 올초에 느끼게 됐어요. 작년에 같이 협업했던 감사한 분들에게 대나무칫솔은 제작해 선물로 드렸는데 ‘덕분에 처음 써본다’는 의견이 절반 이상이었거든요. 그래서 비교적 입문이 쉬운 물건들을 가져다 두어 더 많은 사람들이 제로웨이스트에 ‘입문’하는 곳으로 이 곳을 세팅했습니다. 더 많고 다양하게 제로웨이스트 쇼핑을 하고 싶을 땐, 이미 있는 더 큰 상점에 가서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연말 선물로 제작해 선물했던 닥터노아 대나무칫솔

혹시 또 알아요. 정말 장사가 잘 된다면 우리동네에서 가게를 계약해 제로웨이스트숍을 정말로 만들 수 있을지도요. (혹시나 싶은 긍정적인 상상은 역시나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4. 30만원 이내의 주문도 흔쾌히 받아주는 생산자들

이전의 제로웨이스트숍을 기획할 때 최소수량 100개를 제안하는 생산자도 제법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네에서 작게 운영하는 상점이 비누처럼 신선한 관리를 요구하는 제품을 덜컥 100개나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죠. 그래서 소규모 생산자인 친구들에게 상품을 받아 제로웨이스트숍을 꾸렸어요.

‘달리오로로’는 제작 과정에서 쓰레기를 리사이클링하고,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물건을 만들고 있어요. 그들의 친구라 작업실도 여러번 가보고 라이프스타일을 속속들이 아는 저는 이들의 물건을 들여다 놓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전부터 달리오로로 제품을 많이 쓰고 있어서 망설임 없이 가장 먼저 연락한 친구들이죠.

‘그랩’도 오랫동안 소셜미디어 친구로 지내다 이번에 입점을 하며 인사를 하게 된 관계고, 다른 물건 보다 밀랍향이 진하게 나는 제품인데다, 다양한 모양과 형태의 상품이 있어 믿고 주문했어요.

밝은공방은 제가 빗자루를 직접 쓰고 있었고, 방문도 했던 경험이 있어서 재료와 만드는 방식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꼭 소개하고 싶었고, 5개라는 소량 주문에도 흔쾌히 보내준 고마운 분들이랍니다.

그리고 ‘닥터브로너스’ 비누는 정말 오래전부터 꾸준히 즐겨써 온 정말 좋아하는 제품이에요. 몇 년전에 아이즈와 협업한 행사에 갔다가 환경에 대한 의지가 느껴져서 ‘무포장가게 쓸’을 기획할때 용기 내어 한번 컨택해 본 곳인데요. 작은 제로웨이스트숍에 아낌없는 지원과 응원을 보내주셔서 늘 고마운 곳입니다.

5. 제로웨이스트숍은 물건만 파는 곳이 아냐

(2021/6/28 업데이트)

글을 올리고 나서 제로웨이스트숍을 시도하고 싶은 분들의 문의를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이 흐름이 고맙고 신기하기만 하네요. 우선 사업자를 내는 것이나 수수료 분배는 저에게 문의하실 일이 아니라 카페와 조율해야하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제가 모든 것을 오픈하기에는 저도 저와 협업하는 관계들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문의는 답변드리기 어렵습니다.

제로웨이스트숍으로 먹고 사는 법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100만원 정도의 돈을 동네에 투자할 의지와 일주일에 한 두번 재고를 파악하고 물건을 진열할 한 시간, 두 시간 정도를 낼 의지만 있다면 제로웨이스트숍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제로웨이스트숍은 물건만 파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배달어택같은 이벤트가 있을 때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도 합니다. 카페의 공간을 더 많이 쓰는 일이기 때문에 더 많은 조율도 필요하고요.

저처럼 다른 상업공간과의 협업을 해도 좋고, 가장 좋은건 이미 내가 카페나 책방 등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면 제로웨이스트 코너를 마련하는 거예요. 무포장가게쓸을 기획하며 만난 해방촌 꽃가게 ‘피아노숲’처럼 자신이 판매하는 전문영역에서 포장 없이 판매하는 방식을 더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요. 그런 공간을 찾아서 거기서 제로웨이스트숍을 함께 운영하는 방식을 제안하는 것도 좋겠죠. 그런 가게가 많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에 세 달간의 제로웨이스트숍 운영기를 남겨봤어요.

귤현동제로웨이스트샾은 오늘도 문이 활짝 열려있습니다. 지금처럼 소소하지만 길게 가보려고 합니다.

발행일

댓글 7개

  1. 크게만 생각했던 제로웨으스트숍을 이제 생각을 바꿨습니다
    작게 제 공간에서 시작해도 된다는 용기가 생겼어요:)
    피아노숲 이야기가 있어 깜짝 놀랐구요
    글이 간단 명료하니 재미가 쏙쏙 있습니다

    1. 동네에서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일을 하시는 대표님께 응원의 메세지를 보냅니다~ 조만간 방문 해봐야겠네요~

    2. 규모있는 제로웨이스트숍이 늘어나는 것보다 칫솔이나 수세미처럼 정기적으로 사야하는 걸 동네에서 파는게 제일 좋다고 생각했어요. 피아노숲처럼 식물 분야 제로웨이스트숍도 너무 소중한 존재 ㅎㅎ 특히 식물 택배 시키면 얼마나 현타 오는데요!

  2. 천연수세미 도매 대나무칫솔 면행주 소창행주도 소량도매가능해요.

  3. 좋은정보..감사합니다. 저도 카페를 오랫동안 하다가 제로웨이스트샵을 같이 운영하고 싶어 겁없이 뛰어 들었는데 업체를 알아보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어디서도 선뜻 업체를 공유하려 하지도 않고요.. 우연히 둘러 본 귤현동 제로웨이스트샵 덕분에 맘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1. 응원합니다! 🙂 운영하시면서 좋은 경험담이 생기면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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