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는 잊을만하면 노키즈존 논쟁이 벌어지는데, 어쩐지 농촌은 정반대인 듯하다. 어린이 눈높이에만 맞춰진 듯한 체험 학습이 대부분인 ‘6차산업’ 관광 상품에 자연에서 힐링하고 싶어 농촌을 찾은 성인들은 당황하기 일쑤. 한국의 6차산업에 지금과 같은 체험학습만이 답일까. 다른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봤다.
오키나와를 여행하며 운 좋게 현지에 살고있는 한국인과 연결된 적 있다. 그는 내게 가볼만한 관광지와 함께 ‘누치마스 소금공장’을 추천 했다. 그냥 가볍게 드라이브 해도 참 좋을거라며. 하지만 소금공장이라니,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든 가벼운 휴가를 온 여행객에게 식품공장을 추천 하기란 참 드문 일이다. 반신반의하며 네비게이션에 그곳의 맵코드를 적었다(일본 오키나와에서는 맵코드만 적어도 정확한 지점을 알려준다). 길게 펼쳐진 해안도로를 따라 네비게이션은 자꾸만 지대가 높은 산으로 차를 안내했다. 도로 너머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내심 불안했다. 네비게이션 업데이트는 됐을까, 지도상 산꼭대기에 가까운 그곳은 과연 여행지가 맞는걸까.
산 꼭대기에 가까운 길이 끝나는 곳에 세워진 건물. 이곳이 바로 누치마스 소금공장이다. 사전 정보없이 급히 찾아간 외국인 관광객에게 공장을 견학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엔 소금공장의 공정이나 정체성을 모형을 전시했고, 그것을 관람하는 것으로 견학을 대신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누치마스 소금공장에서는 10분~15분 정도 공장을 견학할 수 있고, 미네랄과 관련된 강연 프로그램도 열고 있다. 소금의 공정을 살펴보며 올라가면, 가장 높은 층에 마련된 종착지에는 식당과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 이런 동선은 세계 공통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상품점이 나타난다. 상품점에서는 소금부터 소금으로 만든 온갖 먹을거리와 뷰티제품을 판매한다.
눈과 입이 즐거운 다양한 소금의 변주들.
소금 아이스크림까지 입에 물고 건물을 나오며 이곳을 추천해 준 이가 전해준 ‘가볍게 드라이브 하고 와도 좋을 곳’이란 소개를 수긍하게 되었다.
이 역시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누치마스는 세계 13개국에서 특허를 받은 특별한 제법으로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꼭 특별한 소금 때문이 아니더라도 산과 바다가 있는 오키나와의 풍광과 깔끔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오기에도 충분한 곳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누치마스 소금공장의 관람은 건물 맞은편 오솔길을 따라 10분 정도면 올라가는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이르러야 비로소 완성된다.
어린 아이들도 쉽게 오를 수 있는 간단한 산책로에는 초록색 풀과 반얀트리, 멕시코 소철같은 열대작물이 살고 있다. 정상으로 올라가면 바로 아래 인적이 드문 청정한 해변이 펼쳐진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바닷가 군데군데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떼를 산 꼭대기에서 볼 수 있는 곳.
오키나와에는 만좌모 같은 유명한 해안 관광지도 있지만, 이곳에서도 또다른 매력을 느끼기 충분했다.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해안을 보며 다짐했다. 이곳은 죽기 전에 꼭, 다시 한번 오리라.
3년 전 찾았던 오키나와 소금공장의 추억을 소환한 건 바로 김현권 의원이다. 지난 4월 17일 발행된 김현권 의원과 한겨레21의 인터뷰에서 김 의원은 농정개혁이나 청년세대 양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농민 출신 정치인의 의견은 많은 지점에서 공감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고개가 끄덕여졌던 부분은 바로 이대목이다.
“선진 농업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잘 활용한다. 농업은 인간에게 먹거리, 삶의터,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생태를 보전한다. 그리고 우선 눈으로 볼 때 농촌이 아름다워야 한다. 우리는 어떤가. 아름답지도 않고 냄새도 난다. 지금의 농촌은 농민들의 생존터이기만 한 게 아니다. 온 국민의 휴식처이다. 우리도 그렇게 가야한다. 영국처럼 환경농촌식품부로 바꾸든 바꾸지 않든,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농촌으로 가는 정책을 펴야 한다.”
언젠가부터 정부가 야심차게 밀고 있는 ‘6차산업’은 어떤가. 많은 농부에게 스트레스 요인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에, 대부분 6차산업의 대상이 지원금이 나오는 ‘학생단체’에 맞춰진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체험 프로그램이 학단을 제외하고는 미성년자 자녀를 둔 가족단위가 아니라고서야 성인이 참가하기에 영 난감한 경우가 많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체험농장도 있지만, 지원금으로 반짝 체험사업을 진행하고 그만 둔 공간은 이도저도 못하는 버려진 공간으로 남는다. 그렇게 버려진 공간 역시 관람객에게 아쉬움을 더한다. 이제는 농장에 방문객을 위한 시설이나 편의를 더하는 것 보다 뺄셈을 하는 건 어떨까.
풍경을 가로막는 고층 건물과 온통 시선을 강탈하는 반짝이는 것들로 채워진 것은 도시로 이미 충분하다. 지금 시골에 필요한 건 관람객을 위한 대단한 체험시설 대신, 그냥 그 자체로도 충분한 자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