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가 ‘월든’일 줄 알았지

※ 홍성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하는 이현석 의사가 기고해준 글입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금마보건지소 © 이현석

서울에서 태어나 주로 서울에서 살아온 내가 공중보건의사로 홍성군 금마면에 온 지 4개월이 지났다.

공중보건의는 줄여서 공보의라고 하는데, 의대를 졸업한 남자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방식이다.

흔히 알려진 군의관과는 다르게 나는 군부대가 아닌 보건지소에서 일한다.

우리 지소는 사방이 논밭이고 일하는 사람도 단 네 명(지방 주사 둘, 나, 그리고 한의사) 뿐이다.


나는 왜 홍성에 오게 됐을까?

지소 앞에서 바라본 금마면 풍경 © 이현석

공보의로 편입된 의사, 치과, 한의사는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자기가 일할 곳을 정한다. 정하는 방법은 무작위 추첨.

서울시를 제외한 각 도에서 원하는 곳을 고르면 그 해의 배정인원에 따라서 무작위로 합격과 탈락이 결정된다(탈락자는 대부분 전라남도에 가게 된다. 섬이 많아서 근무가 힘들기 때문이다).

올해도 천여 명의 후보생이 모여서 추첨을 했다.

가장 인기있는 지역은 경기도지만, 워낙 배정 인원이 적기 때문에 충청도와 강원도에 사람이 몰렸다.

강원도 산간지역은 겨울에 너무 추울 것 같았다. 충청남도와 북도 중에서는 남도가 교통이 발달해서 남도를 골랐다.

두근두근… 섬일까 내륙일까, 운 좋게도 충청남도에 걸렸다.

며칠 뒤 충남 후보생들은 충남도청에 모였다. 충남 내에서 어떤 군에 배치될지를 다시 뽑는 자리였다.

서해안고속도로와 인접해서 서울에 가기 편한 당진 부터 자리가 찼다. 나는 71명 중 26번을 뽑았는데, 보통 이 정도 순번이면 서산, 예산, 홍성 정도를 고른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 중에서 나는 홍성을 골랐다. 홍성군 대표의 멘트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군은 개인주의예요. 공보의들끼리의 모임이 거의 없어요.”

나는 시골에서의 삶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에서 묘사한 고즈녁한 풍경이길 바랐고, 개인주의의 고장 홍성이 그 이미지와 부합한다고 믿었다. 당시에만 해도!


미션, 지역과 친해지기!

4월 28일, 나는 홍성군 금마보건지소에 배치되어 근무를 시작했다.

하루에 열 명 남짓한 환자가 왔는데 고혈압이나 당뇨같은 만성질환을 관리받는 어르신이 많았다.

감기나 알레르기 증상, 관절통으로 오시는 분들도 종종 있었다.

사실 공보의는 따분한 직업이다. 왕성하게 활동할 20대 후반에 시골에 내려와서 지내는 것은 역동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공보의들은 일에서 재미를 찾기보다는 운동, 게임, 취미활동을 하면서 세월을 보낸다.

그런데 나에게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의대-인턴-레지던트로 이어지는 코스에서 의대만 졸업하고 도피하듯 나왔기에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소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진 뒤 나는 고민했다. 공보의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 끝에 공보의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태어나서부터 서울에서 살았던 나는 제대로 된 정착지가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학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나는 대치동 키드였다), 몇 번의 이사를 다녔고, 의대를 다닐 때에는 대학가 고시텔에 살았다.

들뜬 분위기의 대학가는 안정적인 정착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록 타의로 주어졌지만 3년간의 시골생활은 나에게 정착지를 마련할 기회였다.

그래서 지역과 결합하자고 다짐했다. 홍성군과 친해지는 것이 나의 미션이 되었다.


지역과 결합하기

처음 시작한 일은 활자를 뒤지는 것이었다.

군청에서 나온 소식지, 지역 주간지, 통계 연보, 면사무소에서 나온 백서 등을 찬찬히 훑어보며 홍성을 숫자와 텍스트로 접했다.

인구는 10만여 명이고, 35%가 농어업에 종사한다는 통계 부터 공무원의 자녀가 결혼하면 지역신문에 나온다는 것, 비료에 관한 신문이 따로 있다는 것. 이런 사소한 정보들도 주워담았다.

다음으로는 언어에 신경을 썼다. 환자들을 진료하다 보면 사투리를 몰라서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그 뜻을 재차 확인해서 기록해뒀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걸써는(=체한)’ 느낌 때문에 못 잤다.

감기에 걸려 ‘한절 했다(=한기에 떨었다)’

‘왕탱이(=장수말벌)’에 물려서 부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말을 아는 것은 지역과 친해지기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여기까지는 별 노력 없이도 할 수 있었다.

농사체험을 해볼 수 있었던 젊은협업농장 하우스 © 이현석

어떻게 하면 홍성을 더 잘 알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장곡면 ‘젊은협업농장’에서 며칠간 농사를 지을 기회가 찾아왔다.

보건의료학생들을 대상으로 농업 협동조합을 체험하고 배우는 행사가 열린 것이다.

아침에 비닐하우스에서 쌈채소와 허브를 땄는데 몇 시간 일하지도 않아서 허리가 아팠다.

한창 더웠던 날씨라 9시에 가까워지니 하우스 안에 더워서 땀이 흘렀다.

일을 하면서 떠오른 장면은 지소에 찾아오는 할머니들.

진료를 하면서 할아버지들보다 유독 할머니들이 손 관절이 변형되고 허리가 굽었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는데, 사정을 알고 보니 주로 할아버지들이 논일을, 할머니들이 밭일을 맡는다고 했다.

그리고 일의 특성상 밭일이 관절에 더 무리가 간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구부정하게 앉아 일하다 보니, 진통제를 찾는 어르신이 왜 그리 많은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플 때만 드세요’라는 말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채소는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일 나가서 일해야 한다.

짤막한 농사체험 이후로는 지소에 오시는 어르신들에게 조금 더 자세히 질문하게 됐다.

손이 베였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뭘 베셨냐고 물어본다. 참깨를 베다가 다쳤다고 하시면 지금이 참깨 베는 철이구나 하고 배운다.

발에 무좀에 걸리는 분에게는 무슨 일을 할 때 물이 닿느냐고 물어본다. 소에게 여물을 줄 때 어쩔 수 없이 물이 닿는다고 하면 축사의 사정이 그렇구나 하고 배운다.


커뮤니티 생활은 녹록치 않아

관사에서 바라본 동네 풍경 © 이현석

지방에 오는 것은 단순히 거주지가 달라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지방에 사는 것은 지방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지소에 오시는 금마면의 어르신들은 직접 기른 작물을 가져오시고는 한다.

감자, 옥수수, 오이, 호박, 복숭아, 포도, 아로니아 등등 많은 채소와 과일을 맛볼 수 있었다.

덕분에 어느 시기에 어느 작물이 나오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텃밭에서 조금씩 기르는 작물 보다는 비료를 넉넉히 주고 대량으로 기르는 작물이 더 맛있다는 것도 덤으로 알게 됐다. 

어르신들은 작물만 가져오시는 게 아니라 이야기도 한 보따리 싸 오신다.

이곳에서 오래 근무한 주사님과 수다를 떨다 가시는데, 누구네 집 사정이 어떻고, 누구네 집 손녀가 결혼을 했다는 ‘사람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시골은 소문이 빠르고 비밀이 없다.

읍내에 있는 홍성중학교에는 수영장이 있다.

얼마 전에는 수영장에 처음 갔는데, 할머니 한 분이 갑작스레 인사를 하더니 나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셨다.

-나이는 몇 살이유?

-28살이요.

-어디에 산디유?

-금마면에 삽니다.

-뭐 하는 분이래요? 

-공중보건의로 왔습니다.

-결혼은 했는가? 총각인가?

-아니오(…)

할머니가 물어보시는데 대답을 안 하기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조금 찝찝했지만 대답을 했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나 다시 수영장에 갔더니 중년 아저씨 한분이 말을 걸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000(건물명) n층에 사신다면서요? 저는 금마면 우체국에서 일해요~.”

?

맙소사, 나는 몇 층에 사는지는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안물안궁인데…

이것이 좁은 마을 커뮤니티의 세계인가! 분명 홍성에 오기 전 제비뽑기를 하며 상상했던 월든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젊은협업농장에서 들은 이야기도 비슷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농촌으로 내려온 청년들이 적응을 어려워한다고 했다.

청년들이 빈 농가에 집을 빌려 사는데 어르신들이 노크도 없이 불쑥불쑥 방에 들어온다든가, 외식을 하고 싶어도 어르신들이 밥을 차려주면 꼭 먹어야 한다든가, 마을 잔치가 열리면 좋든 싫든 가서 일을 해야한다든가 하는 것들 때문이다.

완전한 도시 사람인 나는 개인주의가 침해받는 것에 불쾌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우리 주사님들은 내가 어제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도 물어보시고, 주말에 서울에 올라가면 차를 가지고 갔는지, 버스를 타고 갔는지도 물어보신다. 정말 궁금한 게 너무 많으시다!

점심은 지소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직접 만들어 해결해야 한다. 재미있지만 귀찮기도 한 노동이다. © 이현석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커뮤니티를 꿈꾸며

잠깐 눈을 도시로 돌려보자. 도시에서는 커뮤니티가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서울에서 나는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도, 우리 지역에 닥친 문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이렇게 해체된 커뮤니티를 복원하려는 운동이 있다. 바로 ‘마을만들기’ 운동.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을 꾸리고, 공동의 관심사를 모아 사업을 추진하고, 다수의 의견을 모으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활동이다.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경제적 이해도 걸려있겠지만 결국 서로 신뢰하고 연대하는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물론 운동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농촌에서는 땅과 일과 사람이 단단히 결합돼 있다. 같은 지역에 모여 살면서, 비슷한 작물을 기르고, 이웃집에서 벌어지는 일은 금방 알려진다.

도시에서는 요원한 문제들이 이미 해결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내가 겪었듯 이러한 커뮤니티가 만능은 아니다.

신뢰의 이면에는 간섭이 있고, 연대의 이면에는 의견 강요가 있다.

커뮤니티의 특징은 이렇지만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감은 나에게 너무 소중하기에, 반드시 지켜내고 싶다.

이러한 개인주의가 확고면서도 지역과 결합하고 싶은 마음, 즉 홍성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한 켠에 있다.

이 둘을 조화시켜서 타협점을 만들어내는 것이 나에게 남은 과제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전망은 어둡지 않다. 나는 여전히 홍성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알 때마다 기쁘다. 그것이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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