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원’이라는 장르의 농사

꽃비원 농장의 창고 앞에서 작업하는 꽃비원의 주인장 오남도씨 © 꽃비원 정광하씨 인스타그램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시골살이에 대한 로망이 있다면 국내에서 그 판타지를 충족해 줄 농장은 단연 ‘꽃비원’이다.

충남 논산에 있는 이 농장은 누구나 로망을 가질법한 농촌풍경을 골라내 전시하는 재주가 있다.

초록의 풀로 가득한 땅 위에 색색의 채소를 올려놓은 꾸러미 사진은 이미 이들의 시그니처 이미지가 된지 오래.

꽃비원의 소셜미디어에는 느리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미지가 가득 채워져있다.

농사에도 장르가 있다면, 꽃비원은 꽃비원이다. 그만큼 비교할만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농장이 없다는 뜻이다.

꽃비원 키친 귀퉁이에는 풍선초가 심긴 화분이 놓여있다.

2016년부터는 ‘꽃비원키친’을 열어 요리사와 협업해 자신들이 키운 제철채소로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을 내온 두 사람.

꽃비원키친은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 덕에 자리를 잡아 올해는 더 넓은 터를 잡아 이사했다.

그렇게 이들은 지난 6월 꽃비원키친의 시즌 2인 ‘꽃비원홈앤키친’을 열었다.


지속가능한 농사를 위한 ‘꽃비원홈앤키친’

꽃비원 부부가 키친을 연 이유는 아내 남도씨가 요리와 공간을 꾸미는 데 재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농사를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2012년 농사를 시작해 처음 1년은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마르쉐’를 끊임없이 나갔다는 두 사람.

서울 혜화동에서 시작한 농부와 요리사, 수공예가 함께 만들어가는 시장인 마르쉐와 꽃비원은 서로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각별한 사이이기도 하다.

다양한 1차 생산물을 매력있게 소개하는 꽃비원은 마르쉐의 취지와 기획을 빛나게 했고, 꽃비원도 마르쉐에서 다양한 소비자와 요리사를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도 연봉 200만원이라는 수입으로 농부의 삶을 지속할 수는 없었다.

부부는 고민 끝에 키친을 열어 자신들이 생산한 농산물과 마르쉐에서 관계 맺은 요리사와 협업해 요리를 냈다.

두 사람과 직접 만나거나 소셜미디어로 가까워진 소비자들은 논산의 꽃비원 기꺼이 키친으로 찾아갔다.

직접 키운 농산물과 복잡한 유통을 거치지 않은 친구들의 농작물과 가공품, 수공예품으로 채운 꽃비원홈앤키친

이렇게 2년 만에 입지를 다진 부부는 논산의 오래된 두부공장과 2층짜리 단독주택을 매입해 꽃비원홈앤키친을 열었다.

“이 건물은 1975년에 ‘연무합동두부’라는 이름의 두부공장이었어요. 규모도 꽤 크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고민 끝에 매입했어요. 저희 농장 앞이 논산 훈련소잖아요. 거기에 두부를 납품하기 위해 만든 공장이래요.”

두 사람은 옛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기 위해 페인트칠도 새로 하지 않고 최소한의 리모델링만 해 공간을 단장했다.

“이 공간은 직접 키운 농산물과 복잡한 유통을 거치지 않은 친구들의 가공품, 수공예품으로 채웠어요. 이 안에서 요리와 구성, 과정, 관계가 모두 심플하게 드러나요.”

광하씨는 애정을 듬뿍 담아 공간을 소개했다.


작은 농사도 힘이 세다

사회 초년생 월급과 비슷한 금액을 연봉으로 벌면서도 부부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주지 않는 다품종 소량생산을 고집스레 이어왔다.

대단한 농법으로 기른다기 보다는 자급자족과 소량생산이 우리에게 잘 맞아요. 그리고 이왕 시골에 왔으니 자급자족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씨앗에서부터 맛보는 기쁨까지 자연스레 누리고 있죠. 키친에서 그걸 함께 맛볼 수 있어 좋기고 하고요.”

그러면서 꽃비원의 뜻인 ‘꽃비가 내리는 과수정원’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작물을 정원처럼 아기자기하게 심으며 단장해나가고 있다.

또, 인위적으로 수형을 조절하지 않고 널찍하게 심은 배 나무 사이로 마늘과 양파를 섞어짓기해 땅을 아꼈다.

사과나무는 세가지 품종으로 그룹을 만들어 함께 심어보며 나름의 실험도 해봤다.

처음에 했던 생각이 ‘사과나무를 품종별로 모아 한 그룹을 분양하면 시즌별로 각기 다른 사과 품종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였어요. 그런데 해보니 왜 사과나무를 품종별로 심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품종마다 돌봐야 하는 시기가 각각 다른데 이렇게 섞어서 심으니까 그런게 참 어려웠어요.”

작은 규모라도 품종이 다양해 일손이 많이 가는 농사지만, 과일에 봉지를 씌우는 것을 빼면 자연 상태 그대로 키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광하씨는 그럼에도 소규모 농사가 꼭 힘들지만은 않다고 소개했다.

“소규모 농사도 나름 강점이 있어요. 그 중에서 트렌드에 맞춰 계획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소농의 큰 강점 같아요. 원래는 배나무가 많았는데 농사를 짓다 보니 제철채소를 키우는 것이 더 잘 맞더라고요. 규모가 컸다면 지금처럼 바꾸는 것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그리고 처음에는 잘 모르고 호기심도 많으니까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팔아봐야 나한테 잘 맞는 품목이 정해져요. 소비자들이 맛보고 싶은데 어디서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것들도 키워볼 수 있고요.”


농장이 없다면 없었을 것들

부부는 같은 학교 원예과를 졸업해 각각 농민단체와 농업 유통일을 하며 농업 커리어를 쌓았다.

농민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경험과 유통구조가 농민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부부는 아이가 생기자 시골로 향했다.

키친에서 식사를 하는 손님들에게 직접 선보인 요리를 소개하는 남도씨. 이날은 슬로푸드문화원에서 전환아카데미 수업을 듣는 참가자들이 방문한 날이다.

어릴 때부터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고 시골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의 장래희망은 늘 산장의 여인이었는데요. 막상 산이 아닌 논산으로 오고나니까 너무 다행인 거예요. 왜냐면 여기서는 도시와 생활이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이를테면 밤에 치킨도 시켜먹을 수 있어요. 만약 도시에서 익숙해져 있는 것들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산골짜기로 들어갔다면 어떻게 적응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여기서 사는게 너무 만족스럽고 좋아요.”

그들이 시골에 정착해 사는 모습을 보고 남도씨의 두 자매와 부모님이 같은 동네로 이사오고, 남도씨의 직장동료 두 팀과 지인들도 이사 왔다.

부부는 자신들의 주변으로 이사온 지인들을 ‘시골에 꽃친(꽃비원 친구들과 꽂힌의 중의적 의미)’이라 부른다.

자신들은 물론, 가까운 사람들의 삶도 바꿔 나간 그들. 모두 농장이 없었다면 없었을 삶이다.

꽃비원홈앤키친 입구에는 들렀다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증샷을 찍게 된다는 포토존이 있다.

벽면에는 두 사람이 손수 붙인 ‘NO FARM NO FOOD’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굳이 묻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농장이, 농사가, 농부가 없었더라면 먹거리 말고도 수많은 의미와 즐거움이 없다는 것을.

작은 농장 하나가 먹이고 바꾸고 만들어 내는 사람과 물건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는 것을.


꽃비원 추천도서 <슬로 라이프>

쓰지 신이치 지음, 디자인하우스

부부가 결혼하기 전, 남편 광하씨가 읽고 큰 감화를 받고 남도씨에게 선물하며 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는 책.

부부는 꽃비원키친에도 이 책을 진열해 두고 일과 삶에 느리고 단순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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