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을 맞들어 여러 갈래의 길을 만드는 시간, 상주 서울농장 <삶팡질팡> 캠프

지하철 플랫폼 풍경 속 우르르 쏟아지듯 바삐 오가는 사람들. 상주라는 지역과 인연을 맺은 여섯명의 청년들도 그런 사람 무리 중 하나였다. 다만 그들은 끝없이 되물었다. 이런 삶이 자의인지 타의인지,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지. 그들은 올해 청정경북 프로그램(서울 청년이 6개월 동안 경북지역에 살며 청년과 지역이 동반성장하는 것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났고, 서울을 떠나 도시에서 삶과 일의 균형을 찾으며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단지 서울을 떠나 시골에 왔다고 이 고민이 뚝딱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시골에서 끊임없이 삶에 대해 고민하는 동지를 얻었다. 자신들처럼 삶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청년이 더 모이길 원했던 그들은 ‘삶팡질팡’이라는 2박 3일의 캠프를 열어 도시 청년을 초대했다. 여기,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그것이 끝없는 고민 때문에 지치더라도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싸’와 ‘아싸’의 구분 없는 동지들이 모이다

캠프가 열린 상주환경농업학교 내 위치한 ‘살롱드 봉강’에서 피자와 맥주를 마시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참가자들


금요일 늦은 저녁 업무를 마치고 상주에 도착한 청년들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소리쳤다.

“우와, 별 좀 봐. 미쳤어.”
“정말, 별 보는 것만으로 2박 3일 다 했다.”

어떤 경계도 느껴지지 않는 어둠 속 한 편에 별과 은근한 빛을 뿜는 폐교. 거기엔 상주로 이주해 ‘살롱드 봉강’을 운영하는 부부의 수제맥주와 피자집이 자리했다. 우리는 탁 트이는 자연과 맛있는 음식, 술이 주는 환대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삶팡질팡 기획팀은 촘촘한 장치를 마련해 흔히 사람이 모이면 구분되는 ‘인싸’와 ‘아싸’의 경계를 지웠다. 가장 먼저 닉네임을 지어 나이나 직업 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했고, 1분 30초 동안 처음보는 상대만 바라보며 얼굴을 그리는 ‘짝꿍 그리기’와 마음을 여는 질문까지.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까지 이력이나 위계보다는 사람 자체에 집중해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손을 꼼지락 거리는 일은 위대하다

친절한 선생님 뱅이 알려주는 방법대로 양말목을 엮는 되살림공예 참가자


다음날 아침 10시, 평소보다 늦은 아침을 먹은 우리는 ‘자격증은 없지만 할 수 있는 일’을 배웠다. 살롱드 봉강 부부가 직접 농사지어 수확한 쌀로 담그는 막걸리, 자연의 재료로 염색하는 스카프, 버리는 양말목을 엮어 만드는 되살림공예, 나무판에 새기는 작품… 자격증은 없지만 업으로 삼아 삶을 일구는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작업을 함께 해보는 것은 일의 경계를 확장하는 시간이다. 게다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반복되는 작업으로 머리 대신 몸을 쓰는 시간은 ‘힐링’을 안겨다주기도 했다.

“제가 한게 틀렸나요?”

“틀리지 않아요. 그런 방식도 있네요. 어떻게 했어요?”

“역시 인생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군요. 계획은 방석이나 바구니가 되어버렸네요.”

“그렇지만 결국에는 좋은 결과가 되었잖아요.”

되살림공예를 운영한 뱅과 참가자들의 대화

양말목으로 만드는 공예에서는 방석을 만드려 시작했으나 실을 열심히 엮다 중간에 길을 잃으면 마무리는 바구니나 주머니가 되는 마법(!)도 일어났다. 친절한 되살림공예 선생님 뱅은 참가자들의 온갖 창의적인 방식에 대해 평가 대신 방법을 물었다. 참가자들도 상대의 작품을 흥미로워하며 응원했다. 어느새 맛이 기대되는 막걸리, 집에 두고 싶은 방석… 직접 만든 결과물을 하나씩 쥐어든 우리의 얼굴에는 흡족함이 퍼졌다. 

되살림공예 참가자들은 각자 원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정답을 거부해도 괜찮아

자신이 찾은 사람책과의 대화를 나누는 참가자들


사회가 요구하는 정답을 용감하게 거부하고 자신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 김혜련, ‘라킷키’ 조우리, ‘무양주택’ 박지원, 박종관, 뱅&댕, ‘언니네텃밭’ 들개. 참가자들은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궁금한 상대를 직접 찾아가는 시간을 보냈다.

사람책 주인공들은 캠프 장소로 오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의 터전에 얼굴도 모르는 우리를 초대했다. 직접 농사지어 갈무리한 음료를 내어주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꾸민 작업실도 공개했다. 참가자가 마음을 열며 울어버리게 된 ‘통곡의 방’도 있었고, 시골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농가주택이 아닌 아파트에 마련된 작업실도 있었고, 겨울의 고요한 포도밭도 있었다.

‘라킷키’ 조우리 작가의 집에서 함께 대화를 나눈 참가자들


“들개님이 같은 공동체 언니들을 ‘우리 언니들이라 부르더라고요. 이 호칭에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념. 공동체에 대한 의미와 애정이 느껴져서 인상 깊었어요.”

언니네텃밭 들개 사람책 참가자의 후기

“스포일러 당하는게 싫다며 계속 새로운 일을 찾는 그들의 삶, 실패하며 배운 것들과 지겨운 이야기를 하는 그들의 삶의 태도를 보며 실수를 좋아할 수도 있다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뱅&댕 사람책 참가자

“젊은 청년 외지인이 이장이 됐고, 그분들의 마음을 잡는데 시간을 쓰고 자신을 강경하게 반대하는 이웃이 손을 잡게 되는 순간 마음이 녹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농촌에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법과 농사 안 짓고 농촌에 사는 법을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박종관 사람책 참가자

“국어선생님이던 작가님이 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다 지리산에서 4년 명상하다 질문이 사라졌다고 해요. ‘공허함은 채우겠다고 이것저것 하고 사회적 자아를 충족시키거나 일로서 성공하려 하지만, 사실 밥 한끼로도 채워지기도 한다’는 이야기에 일상에 정성을 들이는 태도를 배웠어요.”

(김혜련 사람책 참가자)

“자신들이 성공사례로 소개되지만 정답이 있는게 아니라며 경험을 진솔하게 얘기해줬어요. 상주가 생각보다 청년이 많은데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 소도시나 지방에서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새로웠어요.”

무양주택 사람책 참가자

“용기를 얻고 실행하기 위해 왔다고 하니 ‘용기를 가지고 뛰어든 것이 아니라 뛰어들고 나니 생겼다’ 하더라고요. 여기서도 하던 일 하면 되고, 서울은 오히려 재능이 묻히지만 여기서는 그 재능이 다르게 쓰이고 다른 색으로 발현된다는 점에서 용기를 얻게 됐어요.

라킷키 사람책 참가자

서로의 말과 표정을 보며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간을 보냈다. 인생의 답을 정해놓고 요구하는 세상에서 다른 답을 선택해도 오답이 아니라는 것. 이곳에 함께한 우리는 다른 선택에 더 마음이 기우는 사람들이라는 것.


여기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기 

상주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잔잔한 음악이 있던 밤에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진솔한 대화가 오갔다

“교직에 있었는데 공장 기계처럼 돌아가는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결과를 내는 시스템이라서요. 그 뒤로 지역을 다니며 대안학교 선생님들도 만나고 그랬는데 본인들도 같은 고민을 한다며 학교에 남으라 하더라고요.”

“제도권에 계셔주세요. 저도 제도권의 그런 별종 선생님 덕분에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작가가 되겠다 생각하고 글을 썼어요. 날고 기는 예술가가 많다는 걸 알고 깜냥이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프로 작가의 꿈은 접었지만 글은 계속 쓰고 있어요. 아마추어 작가로 사는 것도 행복하고, 자부심도 있어요.”

“저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받아줘야 할 것 만 같아요. 주변 사람들이 주는 영향에 쉽게 휩쓸리는 편이라 나쁜 영향을 끼칠 것 같은 사람은 피하게 되더라고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평안하냐고 물어요. 제가 편안하지 않아서요.”

“전 어색하면 있는 말 없는 말 다 하고 꼭 후회하게 되더라고요.”

‘나, 너 그리고 삶 기웃기웃’ 세션에서 참가자들이 나눈 대화의 일부

모닥불 곁에 공연을 보며, 마지막 날 질문카드를 펼치며 서로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나, 너 그리고 삶 기웃기웃’ 시간까지 참가자들은 끊임없이 서로에 대해 묻고 자신의 고민을 꺼내며 대화했다. 별 것 아닌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시간이 지나니 흑역사, 어디서 쉽게 할 수 없는 고민이나 가치관에 형성을 준 계기처럼 깊은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오갔다. 어떤 질문에서는 잠시 머뭇거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이 여러번 터져나왔다. 여기서는 고민의 종류나 결이 크게 다르지 않아, 누구도 나를 편견으로 대하지 않겠다는 신뢰가 묻어있었다.


고민도 맞들면 위로가 된다

“나 (앞으로) 힘들때마다 상주가 생각날 것 같아”

깊은 밤, 공연을 보던 한 참가자의 입에서 터져나온 말에 모두가 폭풍같은 공감을 보냈다. 참가자들은 긴 시간동안 지치지도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말하고, 서로를 응원했다. 기획자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사는 청년이기에 참가자와의 구분없이 함께 참여해 자신들의 경험이나 고민을 언제든 스스럼없이 나눴다. 참가자들은 캠프 내내 기획자의 손을 잡거나, 와락 끌어안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서로에 대해 묻고 대화를 나누는 참가자들

삶팡질팡 캠프를 기획한 노니는 참가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운 윤슬을 이루며 흐르는 강물’을 떠올리게 되었다 소회를 밝혔다. 고민은 끊임없이 안고 살겠지만 말할 수 있어서, 함께 고민하는 동지가 있어서 어쩐지 시원해 보이는 얼굴들은 어느새 아쉬움으로 변했다. “이 시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정말 즐거웠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개성 넘치는 많은 청춘을 만났다”며 서로를 응원하며 헤어진 사람들. 모두의 얼굴에서 어떤 믿음 같은 것이 느껴졌다. 같은 고민을 안고 사는 한 우리는 또 만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점점 더 많아질 거라는 것, 이런 고민이 모일수록 선택지는 더욱 다양해진다는 것. 

우리의 고민에는 정답을 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상주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오랜시간 고민에 지치지 않을 면역력이 될 것이다.

삶팡질팡 운영진들은 참가자들이 캠프를 보내며 활동하는 사진을 기록해 나눠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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