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자가 되기 위해 보카시 1-2단계를 거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흙이 필요합니다. (음식물쓰레기 분해자로 사는 법 참고) 사실 토분에 흙을 섞어 하는 걸로도 충분한데, 내가 살고있는 집이 옥상이나 발코니가 없는 좁은 공간이라면 시작하기 많이 부담스럽겠죠. 그렇다면 마을에 화단을 만들면 됩니다! 요즘에는 주민자치나 시민참여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어 시민이 공공의 빈터를 가꾸는 일이 예전보다는 많이 쉬워졌어요. 동네에서 유기질쓰레기를 스스로 분해하는 사례가 확산되길 바라며 분해정원을 만든 귤현동의 사례를 정리해볼게요.
1. 사람 모으기
일단 동네 아는 사람에게 무작정 하고 싶다 같이 하자 졸랐습니다. 몇달동안 가만히 듣던 그는 얘가 퇴비에 진짜 진심이구나 싶었는지 조용히 주민자치위원회를 권하더군요. 알고보니 그는 주민자치위원회의 분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쉽게 주민자치위원회 회원으로 입성. 주민자치위원회는 많은 사람과 공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있습니다. 공공의 텃밭을 만드는데에는 사람과 돈이 필요한데, 그걸 동시에 해결할 수 있죠.
처음에는 같이 “동네에서 같이 음식물쓰레기 분해할 사람?!” 하고 제안했더니 사람들이 “그렇다면 음식물쓰레기 버릴 때 돈 안 내도 되는 거야?” 하고 몰려들다가 보카시 버켓 두 개를 사야 한다고 하니까 놀랍게도 모두 흩어지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운명적으로(!) 마인드풀가드너스와 공동체가드닝 기록을 협업하게 됐는데요. 공동체가드닝이라면 어쩌면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인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동네에서 같이 가드닝 하실 분?!” 하고 다시 물었더니 다시 사람이 몰려들었습니다. 물론 보카시 버켓 이야기를 다시 꺼내니 다시 절반이 사라졌지만? 이렇게 저는 3명의 멤버를 가드닝팀으로 만나게 되었어요.
2. 정원부지 선정하기
하고자 하는 놈에겐 하늘이 돕는다더니. 마인드풀가드너스와의 협업은 정말 저에게 운명이었나 봅니다. 인터뷰로 봄봄마을정원사 팀을 만나고 나서 저는 피가되고 살이되는 조언을 많이 얻었어요. 특히 기사 말미에 소개된 보리가 알려준 팁 중에 “공유지는 지자체의 동의와 공유를 반드시 거치라”는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죠. 동에 협조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처음 정했던 땅에서 우리끼리 하다 사라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주무관을 통해 문의해보니 우리는 공유지인줄 알았던 땅이 알고보니 사유지였더라, 그것도 언제 빌라를 지을지 모르는… 이런 고오급 정보를 알게되었습니다. 땅을 정지해준다는 보리를, 그것도 토종 흑보리 씨앗을 잔뜩 파종한게 좀 아깝긴 하지만 재빠르게 다른 장소로 옮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발굴한 터는 마을의 공터. 역시 처음 골랐던 땅처럼 사람들이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려서 문제 해결이 필요한 공간이고, 경로당과 초등학교 옆에 있어서 어린이들과 어르신들에게 좋은 취미나 풍경을 제공해 줄 수도 있는 곳이에요. 정말정말 야트막한 동산의 아래인데 백로가 매년 날아와 둥지를 틀다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분해정원을 만들기로 합니다.
3. 어떻게 정원을 만들까
고백하자면 정원을 만들기 전에 충분히 이야기 나누고 공부했어야 했는데, 그걸 잘 하지 못했어요. 동네이기 때문에 더 자주 만나서 논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각자 연령대나 여유를 낼 수 있는 시간이 다르다 보니 만나서 이야기하기도 힘들고, 스터디할 때 발제가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모임을 리드하다 보니 어느새 “알아서 해주세요”가 주류 의견이 되어버려서 디자인을 다 함께 충분히 고민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 사례를 참고해 분해정원을 만들 팀들은 이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먼저 알아두셨으면 해요. 진행이 이런식으로 되어버리면 제안자는 혼자서 독박쓰는 느낌을 끊임없이 받게되고, 제안자가 아닌 참여자들은 계속 소극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게돼요. 저도 리더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차차 해결해 나가야겠죠.
그래서 결정한 방식은 키홀가든 디자인을 차용해 열쇠구멍 안으로 점보콤포스터를 숨기는 것이었어요. 점보콤포스터가 너무 노출돼 있는 것이 그리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거든요. 누구나 쓰레기를 무단투기하거나 통이 굴러다니지 않도록 열쇠구멍 안으로 넣었습니다. 그리고 열쇠구멍 주변으로는 수세미 모종을 심었어요. 수세미가 자라서 통을 더 열심히 가려주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요.
화단의 높이를 높이다보니 화단 안에는 흙만 채워넣을 수 없었어요. 퍼머컬처의 시트멀칭, 후글컬처를 토대로 몇달동안 박스를 모았다가 맨 아래에 박스, 그 다음에 나무, 그다음에 풀과 나뭇잎, 그 다음에 흙을 넣는 것으로 층을 정했습니다. 저희가 화단을 만든 날이 5월 5일이고, 4월 말에 공원 가지치기가 끝나고 마대자루에 풀과 부엽이 있는 것을 확인했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그것들을 쓰게 될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 이미 깨끗하게 치워진 뒤였습니다. 그걸 자원으로 활용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공원녹지과나 관련 부서와밀접한 소통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어요.
4. 정원 만들기
5월 5일이 되어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목공으로 틀을 제작하기로 계획했는데, 원형을 재현하기 어려웠고, 사이즈를 예측해 디자인해서 나무를 주문할 정도의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데다 같이 모여서 과제 해결을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급하게 벽돌로 바꾸게 되었어요. 먼저 땅을 평평하게 다진 후 긴 호미로 대략의 스케치를 해서 벽돌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틀이 완성된 뒤에는 박스로 밑 부분을 깔아줬고요. 나무가 서서히 썩으며 거름이 될 수 있도록 나무를 넣었습니다. 소나무는 산성이라 잘 안 쓰는데, 위에 적은 소통의 문제로 여기서 구할 수 있는게 소나무가 전부였어요. 어쩔 수 없이 소나무를 깔고, 낙엽과 풀을 깔고 흙을 덮어 정원을 완성했습니다. 나무처럼 커다란 것들이 들어가니 큰 공간이 생기기 때문에 중간중간 물을 줘서 흙과 부엽이 그 사이를 메울 수 있도록 합니다.
마지막으로 상토를 붓고 모종을 심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모종은 적어도 본잎이 2~3장 이상 나온 것으로 심어줘야 해요. 저희는 예산을 최대한 적게 쓰기 위해 마인드풀 가드너스에서 진행하는 컷플라워캠페인에 참여해 씨앗을 받아 집에서 직접 씨앗을 파종해 모종을 만들었어요. 여럿이 하는 일이니 모종 키워온 것이 전부 다르긴 합니다. 이게 공동체가드닝의 매력이겠죠.
물을 흠뻑주고 마무리합니다.
5. 앞으로의 운영
모종이 자리잡기 전까지는 매일 들여다보고 물을 줘야합니다. 특히 이렇게 낮에 기온이 많이 올라갈 때에는 낮에 물주기를 지양하고, 이른 아침이나 해질녘에 물을 주며 들여다 봐야해요.
앞으로 우리는 보카시 버켓을 비우는 주기인 2주에 맞춰 정기모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함께 보카시 버켓을 비우고 낙엽을 덮어주고, 죽은 식물을 걷어내고 집에서 기르고 있는 모종을 보식하는 것으로 모임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함께 생태 스터디를 지속하는 것이지만 함께하는 멤버들이 너무 바쁜 점을 고려해 너무 무리하지는 않기로 했어요. 누군가가 혼자 너무 무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구입한 것들
- 점보콤포스터 구입링크
- 벽돌은 장당 300원에 1000장 구입했습니다. 지역마다 가까운 벽돌공장에 문의해보세요.
- 원예용상토 50L짜리 10포, 식물 지지대, 마끈, 지피7펠렛포트
참고서적
- <가이아의 정원>, 토비 헤멘웨이, 들녘
- <텃밭정원 가이드북>, 오도, 그물코
원래 같이 스터디하려고 했던 책들인데… (눈물 닦고) 퍼머컬처의 이론과 실전이 모두 담긴 가이아의 정원과 정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생태텃밭 만드는 방식을 자세하고 현실적인 사진으로 정리해둔 텃밭정원 가이드북이 분해정원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동네에서 스터디까지 한다면 윗 책들을 꼭 읽어보세요. 동네에서 정원 만들어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마음과 시간을 정원에 내어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소수의 한 두 사람 정도라도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분해정원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유기질쓰레기의 분해자를 더 많이 찾을 때까지 존버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