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랩 인터뷰가 전원속의 내집 ‘작업실’ 코너에 실렸다. (링크/ 기사를 먼저 보시면 아래 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올해로 7년째가 되는 이 디자이너 그룹은 7년째 잘 알고지내는 지인이기도 하고, 계속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 줬기 때문에 언젠가 꼭 소개하고 싶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재미있어서 전원속의 내집과는 성격이 다른 이야기들도 많이 나와서 잡지에 못다한 제로랩과의 대화를 정리해 소개한다.
대화: 이아롬(인터뷰어, 이하 이), 제로랩 장태훈 대표(이하 장), 김동훈 실장(이하 김)
이: 제로랩을 7년 동안 보아왔지만 한마디로 소개를 못 하겠다. 시간이 갈수록 작업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장: 디자인을 하면 교육이나 시스템상 분야를 한정 지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한 지점들을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 방식들을 다른 디자이너들은 어떤 활동으로 풀어나가는지 잘 모르겠으나 온전히 내 손으로 디자인하고, 내 손으로 만들고 싶었다. 해보고 싶은 일은 어딘가에 가서 일을 달라고 하면서 일을 하고. 이렇게 하다 보니 일이 이렇게 다양해졌다. 우리는 늘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나 제품 디자인 스튜디오라 소개를 해왔는데 결국은 다 똑같은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정체성을 규정하기 힘든지 “뭐하는데냐?”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우리가 일부러 정체성을 모호하게 이야기하는 측면도 있다. 분야를 넘는다기보단 처음부터 분야를 모르고 시작했다. 그래서 분야를 굳이 구분 짓지 않는다.
이:그렇다면 왜 이름이 제로랩인가?
김: 우리가 이 회사를 만든지 7년이 지났다. 이전 회사에 다닐땐 지금은 흔해진 ‘스탠다드’, ‘노멀’ 같은 단어들이 많이 쓰였다. 우리도 그런 부분에 많은 영향을 받은 세대다. 그러다 보니 화려한 스타일링만 강조한 그런 제품들을 싫어했다. 우리는 이름을 이렇게 짓고 스타일링만 하는 그런 작업을 하지 말자는 뜻이 담겨있다.
이: 어쩌다보니 제로랩의 모든 작업실을 전부 여러번 가봤다. 맨 처음에는 전형적인 디자이너 사무실이었는데 두번째 작업실부턴 목공소가 되어있어서 많이 놀랐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김: 사람들은 사물이 디자이너의 손에 의해 태어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정말 하이클라스의 디자인 개념이고. 대다수의 디자이너는 주어진 형태에 외관을 그리는 작업을 한다. 나의 작업을 통해 다른 사람이 행복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디자인 작업을 하다 보니 그런 작업들이 무의미하다 느껴졌다. 그것들은 나를 위한 디자인이 아니더라. 그래서 누구를 위한 디자인보다는 나를 위한 디자인을 한다. 회사를 다니며 하던 디자인 작업은 유쾌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 문제의식이 쌓이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이: 처음엔 2인으로 출발했는데 3인으로 갖춰졌다. 그냥 보기에도 분위기가 굉장히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장: 우리가 일반적인 개념의 회사는 아니라 실력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잘 맞고 마음 통해야 하고, 또 세 명이다 보니 합이 잘 맞는 사람 원했다. 믿고 같이 일할만한 사람을 원해서 삼고초려해서 데려왔다. 우리가 특이한 존재(?)다 보니 주변에 같이 일 할만한 동료가 없다. 나는 주로 목공, 철공, 전시 디자인같은 힘 쓰는 일을 주로 하는데 도현이가 와서 많이 도움을 받고 있다.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하려고 해서 자극도 받고.
김: 세 명으로 바뀌니까 한 명한테 의지할 때보단 든든해졌다. 두 명에게 부족한 점을 새로 영입된 도현 씨가 묘하게 잘 메워준다. 우리한텐 패브릭 같은 존재다. 우리랑 합도 잘 맞고.
이: 작업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하는지?
장: 기술적인 부분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우리가 모든 장르에 대해 내 역할이 아니라며 거리를 두고 시도를 하지 않았을 때는 한정적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도 많기도 하거니와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을 적절히 표현하는 데 있어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고 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작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디자이너들과 다르다. 제작을 하다보니 특정 장르로 설명된다기 보단 내가 디자인 할 수 있는 나의 도구를 찾았다는 생각이 크다. 광의의 의미에서 디자인을 어떤 언어로 풀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큰 역할을 차지한다. 그러면서 디자이너로서의 자존감이 채워지고. 인간으로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
이: 디자이너는 ‘도면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제로랩의 경우 제작까지 하니 얻는 것들이 많을 것 같다.
장: 그렇게 하면 자신의 조형성을 찾기 좋은 과정인 것 같다. 제작자와 협업할 때보다 제약도 덜한 것 같고. 물론 직접 했을 때도 제약이 많다. 기술 장비 공간 등. 그런 문제들 있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되고 있다.
이: 그럼 목공, 철공 말고도 또 시도해보고 싶은 재료가 있나?
장: 지금까지 규격화된 재료들만 사용했다면 이젠 근원적인 재료를 써보고 싶다. 나무는 실제 제재해서 써 본적이 있어서 근원적인 재료에 대한 갈망이 좀 덜한 편인데, 금속 같은 경우에는 녹여서 써보고 싶다. 녹여서 주물을 떠본다든가. 어디 철공소 가서 금속 뽑아보고 싶고. 뭘 만드는게 목적이라기 보다는 행위 자체? 그 과정을 작업화 해보고 싶다. 쇠를 녹이는 도구라든지 철광석을 뽑는 장비라든지 그런 것들이 작업물이 될 것 같다.
이: 알고 싶은게 굉장히 많아 보인다. 지적 호기심이 높다는 느낌도 들고.
장: 이건 노동의 호기심?이라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웃음)
이: 장대표님이랑 3년전에 적정기술에 대해 대화를 나눴던 게 생각난다. 요즘에도 로켓스토브 같은 거 만들며 지내는지?
장: ‘적정기술’이라는게 좋은 단어로 너무 포장되어 있지 않나.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원래 있던 기술이고, 흔한 거라 생각한다. 근데 적정기술이라고 하면 어떤 굴레가 씌여지는 것 같다. 혁신적, 친환경적 이런 이미지이지 않나.
이: 그리고 못 생겨야 할 것 같고(웃음).
장: 나도 비싸고 좋은 거 쓰고 싶은데! (일동 웃음)
김: 우리가 그 동네에서 나오는 단어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환경, 공동체, 커뮤니티, 소통을 한다든가(웃음).
이: 어떤 맥락인지 알 것 같다.
장: 소통이라고 하니까 인스타그램이 생각난다. 뜬금없이 “우리 소통해요” 이런 댓글보면 대체 뭘 하자는 건지. (일동 웃음)
이: 어쨌든 남들이 ‘적정기술’이라 칭하는 것들을 시도하지 않았나.
장: 로케스토브가 적정기술인가? 그냥 스토브일 뿐인데. 그러면서 로케스토브가 다른 물건이 되는 것 같다. 로케스토브의 원리는 밑에서 공기를 빨아들여서 거꾸로 탄다는 원리인데 그냥 화덕이지 않나. 과거부터 있던 굉장히 흔한 기술, 그걸 적정기술이라고 한다고? 잘 모르겠다.
김: 그 단어를 싫어하지만 그런걸 만드는 걸 좋아한다. 그냥 만드는 것 뿐이다. 집에서 쉽게 만드는 스토브 만들기.
장: 깡통 갖고도 만들 수 있고. 이러니까 적정기술과 통하는 것 같기도 하네(웃음). 뭘 만들고 싶다면 방법을 찾으면 되고. 또 찾아보면 방법이 굉장히 많다.
이: 생각해보니 그런 입장을 예전에도 밝혔던 것 같다.
이: 비슷한 작업물이 또 있는지?
장: 예쁜 것 좋아한다. 입장은 꾸준하다(웃음).
김: 쇠를 구부리는 기기가 있는데, 저것도 적정기술이라면 적정기술. 어쨌든 원초적인 기술인 거다. (장: 아주 많은 의미가 있다.) 우리의 정신을 대표하는 작업방식으로 택한게 바로 ‘메이킹을 위한 메이킹’이다. 우리가 전시할때마다 사용하는 주제인데, 제품 디자이너로서 우리를 드러내기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실크스크린을 하더라도 실크스크린을 할 수 있는 기기같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든다. 마찬가지로 절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절곡을 하는 기기를 만들었다. 절곡되고 말고는 우리에게 별 의미는 없다.
장: 만들고 나서 한마디 하면 된다. “와, 이거 되네?” 되는 것 봤으면 끝나는 거다. 그런게 우리에겐 재미고 흥미고, 우리의 정신을 대변하는 모습이다라고 생각한다. 이런걸 할때 지속적으로 누군가가 우리에 대해 정의를 내려주고 싶어한다. 그 중에 가장 큰 것이 ‘메이커’다. 그런데 우리는 지속적으로 이 네이밍에 대해 거부하고 있다.
김: 메이커라는 그 단어 자체도 싫다. 소름 돋는다.
이: 어떤 거부감인지 잘 모르겠다. 누군가가 나를 규정하는 걸 싫어하는 건가?
김: 그게 아니라, 단어 자체로 멋있어지는 걸 못참겠다.
이: 디자이너도 그런 단어 아닌가?
장: 한참 그랬는데 이제는 촌스러워졌어. 어디가서 “저 디자이넙니다.” 하는 거. (옆에서 비명 지르는 김) “디자인 해요.” 이렇게 얘기하지 어디 가서 디자이너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김: 어디가면 ‘김 디자이너님’ 소리 좀 안들었으면 좋겠다.
장: 보통 메이커스 스페이스라고 하면 3D프린터나 CNC 같은 장비 가져다 넣는데, 그런데 콘텐츠 보단 기술을 위한 시연회가 된 걸 너무 많이 봐서…
김: 어느샌가 메이커도 의도치 않게 분류가 되어버렸다. 메이커라고 하면 3D프린터를 다뤄야 할 것 같고, 최신의 장비로 직접 만들어서 활동한다거나. 단어 자체가 활동을 축소시킨다고 할까. 디자이너도 예전에 그런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디자이너라는 단어를 자꾸 사용해서 그 활동 범위를 자꾸 축소시키는 그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 우리를 메이커라 지칭하는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우린 메이커가 아니다”라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메이커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했다 그리고서 메이커 꼭지를 달고 나왔다. (일동 웃음)
이: 기자 입장에서 굉장히 힘든 인터뷰이들이다. (웃음)
이: 지금의 제로랩이 이렇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 우리가 이런 활동들을 할 수 있게 해준 작업은 작품보다는 전시다. 우리가 했던 두 세개의 전시가 우리를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장: 그것도 그렇지만 사물학 전시가 단체전이긴 하지만 그 이후의 우리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김: 보통 전시디자인을 주로 한다. 보통 작가들은 작가로서 참여, 전시디자이너는 작가들을 서포트해주는 개념으로 참가하는게 일반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사물학이라는 전시부터 우리가 작가이자 전시디자이너로 참여했고, 이 방식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내가 느끼기엔 전시 기획자들도 콘텐츠 부족인거다. 거의 모든전시가 이런 식으로 우리를 찾더라. 사물학 전시 이후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해서 그 이야기를 하는거다.
장: 단순용역으로 갔는데 어느새 작가가 돼 있다. 가만보면 우리가 써먹기가 참 좋다. 이야기를 만들기에도 얘네가 굉장히 괜찮다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김: 그것도 그렇지만 우리로서도 좋은게 어떻게 보면 전시디자인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우리가 굉장히 소모됐다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형태 (공간디자인부터 참여작가까지)로 참여하게 되면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있다. 더 보람있고. 어차피 우리를 위해 일하는 거니까. 이왕이면!
이: 단순용역이 작품이 된다고?
장: 단순 용역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제는 애초에 모든 역할을 맡기려 우리를 부른다. 그런데 모든 전시가 그런 건 아니고. 맥락이 맞았을 때. 이를테면 사물학 전시가 그랬고. 핸드메이드위크도 그랬고.
김: 우리가 하는 전시 디자인 자체를 그냥 용역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전시 디자인 하는 것 자체를 전시라 느끼는 분들이 있다. 그래서 사물학도 마찬가지고 타이포도 마찬가지고 우리는 그냥 전시디자이너인데 전시디자이너 꼭지로 우리가 들어가면 되는데 그런게 아니라 우리를 드러내준다. 작가로서 이건 제로랩이 한 거다 명시해주고. 그걸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들의 기획에 맞다고 느끼시는 거다. 내가 느끼기엔 이왕 전시를 한다면 하나하나 의미 있는 요소를 넣어야 한다 생각하시는것 같다. 그랬을 때 전시디자인 하나도 그냥 용역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연계돼있는 전시와 디자인과 공간이 연계 돼있길 바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변방연극제부터 그랬던 것 같다. 어느새 우리가 참여하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 해주고 집기필요하다 그래서 집기 만들고 있는데 그게 프로그램이 돼서 우리가 뭘 해버렸어. 이렇게 된다. 우리도 거부하지 않았다. 우리한테도 디자인을 넘어서 참여할 수 있는 영역들을 자꾸 넓히려는 의지가 있었다.
이: 공간디자인 할 때 중점으로 두는 것? 공간 디자인하면서 뭐 만드는데도 없지 않나?
장: 공간이라고 말한다면 건축적인 개념 같고, 물건을 만든다는 개념이 맞는 것 같다.
김: 집기 디자이너? (웃음) 공간 디자인이라는 방법론 자체가 다른 디자이너들과 다를 수 있다. 집기가 공간을 만드는 방식. 사물 몇 개만 가지고도 공간이 힘을 가질 수 있는 방식. 그 힘이라는게 튀는 게 아닌 너무 자연스럽길 바란다. 이걸 놨을 때 어떤 사용이 될 수 있을까를 좋게 말하면 열어 둔다는 것. 큐레이터가 우리의 집기를 좋은 역량으로 사용해줬으면 하는 마음?
이: 레이아웃이나 설치까지 직접하나?
김: 레이아웃까지만이다. 설치는 안한다.
이: 내가 디알못 이라고 한다지만 보도 듣도 못한 디자이너 그룹같다. 영향을 받은 디자이너나 집단이 있나?
김: 처음 제로랩을 만든 당시 우리에게 영향을 준 디자이너들은 우리랑 정 반대다.
김, 장: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거만 본다(웃음). 우리 때는 자스퍼 모리슨(영국 디자이너) 하라케냐 등을 좋아하는데, 아마 대다수의 디자이너들이 존경할거다.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스타일과는 어떻게 보면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김: 모두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인데 우리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지 않는다, 지금은.
이: 초기엔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김: 이게 많이 바뀐다. 내부에서 많이 바뀌는게 이제는 특히나 내가 바뀌는게 뭐냐면 나는 제품디자이너였다 공간디자이너였다 그래픽 디자이너를 한다. 그러니까 정말 많이 바꼈는데 난 이제 화려한게 좋다. 난 이제 미니멀이 싫다. 아예 싫다. 분야가 섞이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는데, 예전에는 디자인을 좀 편협하게 봤다. 아까 말했듯이 왜 외관을 자꾸 꾸미고 그런 걸 안좋아했다면, 지금도 제품 디자인에 있어서는 같은 입장이지만, 그래픽 디자인을 꾸미는 방식은 나한테 굉장히 새롭더라. 나도 제품디자인을 6년하고 그게(화려한 디자인) 아닌 걸 깨달았으니까 그래픽 디자인을 오래하다 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을 지도 모르는데 분야와 분야가 혼합되는 지점에서 느끼는 그런 것들이 있다.
이: 구성원이 셋이다. 의견 조율 어떻게 하는지? 다수결? 오더?
장: 의견 교환하지 않는다(웃음).
김: 한 사람이 하면 그냥 하고 있다. 이건 진짜 자연스럽다. “너가 해”도 아니다. “내가 할게”도 아니다. 누군가가 하고 있다. 어느 순간, 그 사람이 하면 다른 사람들은 신경 안쓰고 쳐다보다 도와준다.
장: “도와줘” 그러면 도와주고.
이: 프로젝트별로 리드하는 사람이 다르다고 이해하면 되나?
김: 그렇다. 먼저 시작하는 누군가가 하고 있다.
이: 그 누군가라면 프로젝트 따오는 누군가를 말하는 건가?
장: 그런 것도 없다. 다같이 공용메일 쓰니까 서로 얘기도 안한다. 근데 어느 순간 서로 나눠서 하고 있다.
이: 기준은 그 프로젝트를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
김: 딱히 그런것도 아니다.
장: 유일하게 나뉘는 건 그래픽이다. 그래픽은 우리 둘은 아예 손을 안대고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재미있는 포인트가 없어서 재능 없다 생각하고 놓고 있다. 동훈이가 그래픽 하다보니 내가 제작을 더 많이 하는 경우는 있는데 의도적으로 이건 니꺼, 내꺼 나누지 않는다. 한 번도 그런 적 없는 것 같다.
이: 그럼 하기 싫은 프로젝트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김: 들어올 수 없다. 우리가 영업을 안하는데 어떻게(웃음).
장: 하기 싫은 건 아니지만 우리랑 안 맞는게 들어오기도 한다.
김: 이를테면 번듯한 곳에서 뭘 해달라고 하는 거? 뭐 구체적으로 딱 짚어서 선택하기 힘든데 우리를 찾는 사람들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기획자, 큐레이터, 작가들. 작가들도 메이저급이라기 보단 비슷한 사람들이 찾아오는데, 가끔 결이 다른 쪽에서부르는 경우가 있다. 모르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우릴 단순히 제작하는 데로 생각하고 오기도 하고, 뭐 그런 경우도 있다.
장: 가끔 “아저씨 여기 합판 짜주세요.” 하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웃음). 그럼 옆에 있는 목재소 보낸다.
이: 그럼 요즘엔 전시를 위한 디자인을 가장 많이 하나?
장: 그런 셈이다. 표면적인건 그런거고. 각자의 욕망? 각자하고 싶은 걸 일과의 중간지점에서 어떻게 녹여내느냐. 그런 고민을 하며 작업을 한다. 재미가 없으면 일 못한다.
이: 같은 얘기를 계속 하는 것 같은데 어디에도 없는 존재같다. 어떻게 보면 실험적이기도, 마이너하기도, 예술과의 경계도 오가는 것 같다.
김: 그걸 우리도 평소에 생각한다. 사실 실험적이란 말을 우리도 쓴다. 실험적이고 상업적이고. 경계를 허물고.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길 우리도 막 쓰는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이렇게 된건지 곰곰히 따져봐도 모르겠다. 이게 바로운명인건가?
장: 내 생각도 비슷한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느순간부터 내가 하고 있는 이게 디자인이지 않나 생각한다. 내가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순간부터 가면 갈수록 와 이거 내가 디자인 했어, 이거 내 작품이야 이런 것도 아니고 모호한 측면이있다.
김: 개인적으로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내가 활동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나는 대기업엔 갈 수 없으니까, 가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뽑아 주지도 않을거고. 그렇다고 공무원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사실내가 배운 것과 뭔가 연결 시키긴 해야 할텐데 마음 끌리는대로 가다보니까 얼마나 더 내려놓을 수 있는가에 대한 싸움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쩌면 남들보다 많이 내려놨기 때문에 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왜냐면 내가 힘들기 때문에. 이렇게 활동하는 거 1년은 쉬울 수 있지만 4-5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한계를 알아서 이렇게 활동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가 환경이 좋았다면 이렇게 활동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 늘 궁금했던게 먹고사니즘 해결은 되나?
장: 좋아진다기 보다는 점점 완화되고 있다 표현하면 되겠다.
김: 이런건 좀 다행이다. 일 자체가 직종 자체가 유행을 타는 직종은 아니라. 성수기, 비수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장: 우리 의외로 방학시즌에 비수기야.
김: 올해는 아니잖아, 그런 위험부담이 있긴 하네.
장: 나이 먹어서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데. 마흔, 마흔 두살 때까지 작업 방식이 많이 변해야 할텐데 그때까지 이러고 있으면 안되는데. 단순히 사람 부리는게 아니라 좀 제대로? 난방도 되고 사람답게 작업할 수 있는? 제대로 하고 싶다. 지금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것. 이 나이때 할 수 있는거고 더 나이 먹으면 안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다.
김: 마흔 넘어서 이러고 있으면 어떡하지?
장: 그래도 한편으론 작업실로서의 목표는 달성한 것 같다. 이제 다음 스텝에 대한 문제가 남았다.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가느냐, 그 부분이 마흔 넘어 어떻게 가느냐라는 언어로 표현을 했다. 마흔 넘어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 같아 불편하긴 한데 우리가 40대가 되었을 때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는 고민이 있다.
이: 그러면서 7년동안 유지한 비법도 궁금하다. 그룹으로 디자인을 하면 많이 헤어지지 않나?
김, 장: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른다(웃음).
장: 그런 것에 대해 “우리 꼭 함께 가야해! 우리 헤어지면 절대 안돼!” 이러진 않는다.
김: 일하는 방식의 차이이지 않을까. 그런 분들은 아마 매회 프로젝트를 같이 하지 않나. 같이 하기 때문에 다툴 수 있다. 우리는 진짜로 개개인이 자신의 역량에 따라 일을 하는 거다.
이: 같이 할 수 있는 거 같이 하고, 따로 할 때 따로 하고 그런 건가?
김: 그런 셈이다.
장: 각자의 작업들이 발현되는게 다를 순 있는데 묘하게 어떤,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 보다는 방향성이나 가고 싶은 그런 것들이 묘하게 같은 것 같다. 생각하는 것도 다르지 않고. 둘이 일단은 둘이 많이 얘기하기는 하는데 첫 미팅 할 때마다 둘이드는 생각이 딱히 다르지 않다. 그러니까 각자 작업해도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이 있다.
김: 누가 작업하든 사실 크게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서로 생각할 수 있는 범위를 갖고 있고 방향성이 비슷하다는 거다. 서로가.
이: 누가 해도 다 같은 결과물이 나온다고? 좀 무섭다.
김: 결과물도 각자 스타일로 나오긴 하는데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애매하긴 한데 그런거다. 찢어지는 데는 뭐 우리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 결과물을 냈을 때 다른 사람이 못 참아 할 수 있는데 그런 적이 없다. 못 참아서 다시하기에도 서로 귀찮고(웃음).
장: 어떻게 다시 해 이걸. 이 소중한 걸(일동 웃음).
김: 서로의 작업이 어차피 서로의 커리어다. 그런거다. 방향성이 같으니까 누가 봐도 “이거 제로랩이 한 거 맞아?” 라는 결과는 안나오니까.
이: 이런것들이 의식하지 않아도 늘 맞는다고?
김: 그게 당연한게 6년동안 같이 했고, 스킬이, 하고 있는 작업방식이 비슷하다. 지금 당장 새로운 사람이 와서 6년동안 우리랑 같이 작업을 하면 그 사람도 자연스레 우리 스타일로 바뀌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한다.
장: 어느정도 커리어를 함께 쌓아온 데는 어딜 봐도 그냥 같이 가는 것 같다.
이: 일종의 공동운명체 같은 건가?
김: 그런 셈. 빅뱅 같은 거다. 빅뱅의 대성이가 그랬거든. (빅뱅) 나와 봤자 이제 할 게 없다고.
이: 각자 군대 갔다 오고 솔로 활동 하면서도 또 뭉치는?
장: 이번에 충무로 쪽에 그래픽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작업실 하나 더 낼 거다. 거기는 동훈이가 주로 있을건데 이제부터 이원화해서 작업할 예정이다. 우리 숙제가 따로 하면서 이 시스템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작업외적으로 사업 쪽으로 가냐? 아니면 개인적 역량을 키워서 개인브랜드로 가냐 이런 고민도 하고 있다. 여러가지가 있을텐데 아직 모르겠다. 우리는 항상 자연스럽게 모든 일이 흘러갔다. 이사가면 규모가 커지기도 했고. 가보면 또 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 앞으로 또 엄청나게 변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장: 시작부터 보지 않았나.
김: 맞다. 아롬 씨는 우리가 시작할 때부터 봤다. 그 땐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이: 그 땐 컴퓨터만 있는 작업실이었다.
김: 우리 대출하고 워크숍 다닐 때. 그 때였다. 처음 대출받고 뭔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기 위해 워크숍을 다녔다. (장: 할 일도 없었고) (웃음)
장: 현금 300만원 뽑아서 맥 사고 했던 시절. 그 땐 우리 모두 20대였는데.
이: 대표님도 20대였다고?! 무튼 그 때 25살이라 가장 어렸던 나도 30대다. 그 땐 철 자르고 나무 자르고 이런걸 상상도 못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또 엄청 자연스럽다.
김: 그렇다. 맞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장: 워크숍 다니면서 더 가르쳐달라고 해보겠다고 조르고, 유튜브가 선생님이고. 구글, 네이버… 궁금한 걸 못 참아서 해결될때까지 찾아보면서 여기까지 왔다. 지금도 그렇다. 그렇게 하다 보니 진짜 많이 알게 되었고, 많이 변했다.
이: 제 3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맨땅에 헤딩 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모습도 예측불허이고. 마지막으로 어디까지 도전해 보고 싶은지?
김: 뮤직비디오 한 번 찍어보고 싶다. 나는 디자인을 정말 좋아한다. 예전 회사 다닐 때 지루했던 디자인도 정말 좋았고, 아무것도 모를 때 했던 디자인도 좋았고 지금 하는 것도 좋은데 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뮤비를 꼭 한 번 찍어보고 싶다. 음악이 주는 파격과 디자인이 주는 파격은 수준이 다른 것 같다. 디자인을 통해 느끼는 것이 다양할 것 같다. 아까 말했던 자존감 같은. 어쨌거나 나를 위해 디자인 하는 건데 내 제품을 보고 타인이 좋다고 해주는 것 보다 나를 떠올리는 것이 더 좋다. 그런 부분에 있어 음악은 디자인이 가진 한계를 넘어갈 수 있는 장르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근데 내가 음악은 못하니까 뮤직비디오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웃음).
장: 하고 싶은 게 굉장히 많다. 뮤직비디오가 하나의 장르라 하면 난 따로따로 해보고 싶다. 음악도 해보고 싶고. 영상도 해보고 싶고. 근데 지금은 그걸 할 여력이 없어서 영상을 찍는 다든지 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이: 뮤직비디오 이야기 그만하자(일동 웃음). 대답이 재미있어서 기사에 넣지 않을 얘기까지 많이 했다. 오늘 인터뷰 한 소감을 말한다면?
김: 인터뷰할 때마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 아, 내 생각이 이랬구나. 알 수 있다.
장: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