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란, 생태계를 믿고 가꾸는 힘

농사 잘 짓기로 유명한 농민을 찾아 비법을 물었다. 그의 하우스 한 쪽에는 오래된 농대 재배학 교재가 놓여 있었다. 그가 이 책을 얼마나 많이 읽고 참고했을까. 책은 원래 부피의 세배나 부풀어 올라있었고, 흙물이 배지 않은 쪽이 없었다. 그 책을 유심히 살펴보는 내게 농민이 말했다. “이 책은 아주 오래 전에 농대를 나온 친구가 준 건데 처음에는 정말 많이 보고 많이 참고했어요. 그런데 이대로 한다는 건 똑같은 농산물을 만드는 방법이더라고요. 전국의 농민이 똑같이 농사지어서 도매시장에 내봐야 결국 사이즈로 가격을 매기기 밖에 더 하겠어요. 지금은 새로운 작물을 기르더라도 재배기술을 참고하지 않아요. 내가 직접 시행착오를 몇 번 겪어보면 터득하게 되죠.” 

농민들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정말 많다. 농촌진흥청 산하기관인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다양한 재배방법을 교육하고, 신지식인이나 농민의 최고 장인을 뜻하는 ‘농업마이스터’를 선발해 그들의 영농정보를 부지런히 양성하고 배포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내주는 선배 농민이나 농학자가 아니라 말 없는 농작물이 스승이다. 그는 소비자에게 여전히 유기농임을 증명할 수 있으면서도 벌레를 죽여주거나 채소의 빛깔을 예쁘게 물들이는 유기농 인증을 받은 농약이나 퇴비 대신 작물을 믿는다. 퇴비나 천연농약이 당장의 답답함을 해소해줄 지 몰라도 작물들이 스스로 하우스 안의 생태계를 조절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에서는 불문학 강사인 조제프 자코토의 일화를 소개한다. 네덜란드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교수인 자코토는 네덜란드 학생을 가르치며 “저는 여러분에게 가르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말한다. 대신 학생들이 끊임없이 공부하게 만들고 믿어준다. 작물이 스스로 생태계의 균형을 잡기를 믿고 기다려주는 농민과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학생이 일방적인 배움에서 해방되어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스승. 하는 일은 다르지만 둘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알려주는 스승이다. 

유학을 다녀온 학자들은 해외에서 ‘한국의 농업이 가장 친환경적인 방식이다’ 배웠다 말한다. 생산한 것을 분해시켜 다시 땅으로 되돌려놓는 한국의 농업은 생산부터 분해까지 완벽한 순환으로 반복된다. 생태계는 이처럼 생물과 유기물의 다양성이 순환되는 닫힌 계를 뜻한다. 이 안에서 생물과 유기물은 서로 소통하며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의 양분이 되어 끊임없이 순환하고 확장한다. 과거의 생명이 유기물이 되어 다음 생물의 삶의 터전을 만드는 생태계의 순환은 학생들이 일방적인 배움에서 해방되어 서로의 의견이 끊임없이 존중되는 무지한 스승의 가르침처럼 자연적이고 능동적이다. 

일방적인 지식이나 기술 습득이 소화되고 분해되는 과정 없이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면 그것은 순환의 연결고리를 자르는 행위다. 소비자가 가장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라 믿는 ‘유기농’도 마찬가지다. 소비자 입에 화학비료와 농약을 양분으로 자란 농산물이 들어가느냐, 유기농 인증을 받은 무언가를 투입한 땅에서 난 농산물이 들어가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농민이 어떤 생태계를 만들어나가는가가 유기농업의 핵심이다. 농민이 생계의 문제에서 해방되어 스스로의 생태계를 존중하며 땅을 일굴 때 농민은 더 좋은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다. 이런 농사가 지역의 떼루아(풍토)를 반영하고 먹거리의 다양성을 만들며 생태를 훼손하지 않는다. 순환의 흐름을 존중하며 착취하거나 축적하지 않는 사람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사회가 공동체를 구원한다. 


솔직히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완성된 글의 형태로 만드려다보니 책을 읽고 든 의문점은 사뿐히 점프하고, 제가 꽂힌 평등한 교육을 위주로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랑시에르 만세! 좌파짱짱” 같은 글이 나온 것 같기도. (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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