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아니었다.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이야기다. 최근 같이했다고 생각한 ‘프로젝트(이것은 나의 지칭이다)’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나는 그 프로젝트를 ‘공식적인 일’로만 생각해왔다. 그래서 아주 잘하지는 않아도 결과에 책임질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가 나올 때마다 스스로 반문했다. 이 결과가 정말 괜찮은가? 이 일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책임지고 있는 것일까? 질문을 거듭할수록 자신이 없었다. 이 마음은 자연스레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돌이켜보니 나는 공적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에는 ‘공적영역’이 완전히 빠져있었다. 나는 나의 답답함과 책임에 대해 어느 정도 요구할 수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일은 공적인 과정은 완전히 삭제된 채 사적으로만 흘러가고 있었다. 결과물을 책임지기 위한 의논이나 요구, 피드백 같은 공적영역이 삭제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이고, 무엇이 사일까. 아리송한 이 문제에 대해 동거인과 친구와 짧게 토론했다.
동거인은 ‘계약’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 공적영역 같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연인끼리 상처 주고 화해하는 방식은 두 사람의 사적영역이다. 하지만 이 사이에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공적인 영역으로 옮겨와 처벌을 가하게 된다는 것. 나는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곧 ‘법적 효력만이 공적인가?’는 질문이 생겼다.
고민 끝에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개인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평가’하는 것이 공적영역이라는 것이다.
두 영역을 제대로 분리하지 않았던 나도 사적인 감정 때문에 공적영역에서 버튼이 눌린 일이 하나 있었다. 직전의 거래를 망쳐 신뢰하지 않게 된 사람이 내가 주최한 행사에 오겠다고 했을 때, 나는 그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의사를 전달해버렸다. 그러나 나의 지난 경험으로 그의 참여를 거절한 것은 나의 사적인 마음이 공적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사람이 모인 자리는 사적이지만 공적이다. 상대가 폭력이라 느끼는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하고, 사람 수가 많아질 수록 규칙은 더욱 까다로워진다. 공공의 영역은 개인의 기분이나 호불호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모인 자리는 폐쇄적이기 때문에 규칙을 정하더라도 누구하나 명확한 과정을 제안하지 않으면 다수의, 혹은 힘 있는 사람의 감정으로만 흘러갈 위험이 있다. 이 끝은 복불복이다.


잦은 이직을 하며 다양한 조직 안에서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이 분리되지 않은채 과정과 결과를 흘려보낸 경험을 많이 해왔다. 이를테면 조직 안에서 폭력이 발생했을 때, 사건을 따로 분리한 채 평가하고 규칙을 정하는 ‘함께 해결해나가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악마가 되거나 피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예민한 사람으로 낙인 찍히거나, 심지어는 떠나는 방식으로 종결된다. 원망하는 사람과 원망받는 사람만 남는 결과는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는 개인의 단도리 이상의 무엇이 남지 않는다. 여러 조직을 거치며 이런 일을 경험했지만, 이 두 가지를 분리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조직 안에서 이루어진 경험이 없었다.

특히나 공적이어야 할 조직이 두 영역을 분리하지 못할 때, 조직원을 일이나 동료를 대하는 태도나 결과물이 아닌 ‘개인의 인성’에 의해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부정치나 내부의 감정적 합의 같은 ‘느낌적 느낌’에 의해 흘러가는 조직에서는 눈치를 챙겨야만 마찰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고 일할 수 있다. 그런식의 평가는 조직원의 에너지를 빼앗고, 일의 생산성을 그르친다.
경험적으로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대부분 다 같이 모여 일에 대해 평가하고 ‘다음’을 이야기한다면 누구도 이탈하지 않고, 크게 상처받지 않고 끝날 수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개인이 비난받는 것으로 책임지고, 조직은 반성과 성찰없이 사건이 종결되는 일이었다. 반성과 성찰없는 조직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때의 우리에게는 왜 이런 감각이 없었을까. 돌이켜보면 나도, 사람들도 이 부분에 대해 배움이 부족했다. 이 감정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 채 감정에만 취하면 술이 술을 마시듯 감정이 감정을 갉아먹는다. 판단이 흐려진 마음은 감정만을 신뢰하고, 그룹 안에 남는 자도 그룹을 떠나는 자도 합리적인 판단과 결론에서 멀어진다.
사람들은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살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공적이며 사적인 환경 안에서 일하고 감정을 겪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때 감정에 지배받지 않으려면 이 두 가지를 분리해 생각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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